[가정예배]8월 4~9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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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29일(화) 13:45

월-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
본문 : 전 3:1~15
찬송 : 487장

제레미 린이라는 NBA 농구선수가 있다. 그는 하버드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191센치의 장신의 체구를 가진 영리한 경기를 펼치기로 인정받는 선수였다. 하지만 NBA에서 실력 차이를 경험하고 늘상 벤치에 앉아 있는 신세로 있다가 소속팀에서 방출당했다. 그는 두 번의 방출로 인해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좌절 가운데 있던 중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어 삶의 전환을 경험한다.
 
예전에는 농구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려 했는데, 농구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삶으로 준비하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속팀이 연패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출전하여 팀을 연승으로 이끌게 된다. 그는 지금 NBA에서 주목받는 선수가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뛰고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는 자신의 실수로 실패를 경험할 때가 있다. 오늘 성경은 범사에 기한과 목적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수많은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게 된다.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정한 때가 있다. 본문 2-8절에 보면 14가지 기한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기한과 한계를 주셨을까? 우리의 인생이 유한한 인생임을 깨닫고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삶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 위기도 주시고 기회도 주신다. 그러나 이 모든 시기는 인간인 우리가 예측하거나 측량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아름답게 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신다. 그리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신다. 영원을 사모한다는 것은 위기를 만났을 때나 기회를 얻었을 때에나 그 시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아무리 성공을 했다고 해도 하나님을 찾기 전에는 성공이 아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되고 인생의 소중함도 알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은 인생을 살면서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이 없음을 알게 하신다.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 사람은 스펙이나 환경, 조건이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 가치를 찾은 사람은 신나고 아름답고 보람된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며 드러내기보다 지금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격려하고 축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삶을 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아름다운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수많은 경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셔서 범사에 기한과 목적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성민 목사
/울산호계교회


화-성령의 첫 번째 열매
본문 : 요일 3:13~18
찬송 : 220장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다. 동일하게 주님은 오늘 나에게 묻고 계시다. 왜 이 질문을 하실까? 사랑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뿌리가 마르고 잎만 무성한 것과 같은 삶은 허구이다. 봉사와 구제와 선교와 예배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샘이 말라 있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모든 성령의 열매의 기초는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은 성령의 첫 번째 열매인 동시에 모든 성령의 열매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구원받은 사람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알 수 있다.
 
두 유형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한 유형은 사랑스러운 사람을 찾아다니는 사람이고, 또 다른 유형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에게서 사랑스러운 점을 발견하며 사랑하는 사람이다. 두 명의 화자가 있었다. 한 화가는 시간과 경비를 들여서 세상을 돌아다니며 '가장 사랑스러운 얼굴'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또 다른 화가는 자신은 썩 위대한 화가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자기 주위에서 '사랑스러운 얼굴'을 발견하고 그리곤 했다. 어떤 얼굴도 전부 단점으로만 가득찬 얼굴, 전부를 무시할 만한 얼굴은 단 한 사람도 없음을 발견했다. 둘 중에 누가 더 훌륭한 화가인가? 오늘날 우리는 율법적으로 정죄하고 비난하며, 형제와 자매의 모습 속에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무시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표지라고 사랑의 사도 요한은 반복해서 말한다. 왜 사랑해야 하는가? 사랑의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못 먹고 못 입어서가 아니다.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할 대상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하다.
 
구원받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랑의 능력을 회복한 것이다. 새 사람이 된 것이다. 사랑은 죄를 덮는 능력이 있다.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변화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변화되기 전의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자.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경청하는 것이다"라고 신학자 폴 틸리히는 말한다. 충고, 조언, 설교, 비판을 내려놓고 상대의 말과 마음을 읽어주고 받아주고 이해해보자. 성령의 놀라운 만지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모든 성령의 열매는 사랑에서 시작한다.
 
오늘의 기도
 
권세와 능력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사랑의 능력을 가진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음성과 형제 자매의 마음을 경청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덕영 목사
/삼성교회


수-예수님의 스태프
본문 : 요 3:29~30
찬송 : 88장

그가 요단강에 나타나자 구름떼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약대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두르고 먹는 것도 예사롭지 않아, 주식이 메뚜기와 석청이었다. 그의 눈빛은 감히 마주 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로마의 지배 하에서 크게 숨 한번 쉬지 못하고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의 거침없는 설교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요한의 말대로 요단강에 줄 지어서서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백성들이 세례요한을 자신들이 기다렸던 메시야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자신의 뒤에 오실 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증거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묶어드리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열광했다.
 
그런데 얼마 후, 예수님께서 오시더니 그에게 세례를 받겠다고 하신다. 세례요한은 조심스럽게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 얼마 후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시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메시지를 선포하신다. 그러자 세례요한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향했다. 그러자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요한에게 불평을 토로했다. 바로 그때 그런 제자들에게 오히려 세례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불만을 가질 게 아니라, 바로 나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증언해 줘야 한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지만,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도 큰 기쁨이 있다. 내가 바로 그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느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야말로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인류를 위한 진정한 메시야이심을 알고 있었기에 들러리의 기쁨을 말할 수 있었다. 우리 인생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길을 미리 예비하기 위해 세례요한은 의상과 소품, 설교를 준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한 곳에 모아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모아진 마음도 관심도 모두 예수님께로 돌려놓고 자신은 무대 뒤로 사라지는 역할을 기쁘게 감당하였다.
 
누군가를 위한 조연의 역할을 진심으로 기쁘게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스태프로서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고 인류를 위한 구원자 예수님 뒤로 조용히 물러나 그것을 자신의 기쁨이라고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오늘의 기도
 
평화의 하나님,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과 같이 그가 온 생으로 말해주었던 이 들러리의 기쁨을 이 시대에 우리도 자신의 기쁨으로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선미 목사
/예지교회


목-영적훈련의 유익
본문 : 삼상 17:48~50
찬송 : 353장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것 없는 일이지만 오랜 세월 꾸준히 최선을 다하여 훈련한 결과로 달인이 된 것이다. 이처럼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은 평범한 사람을 달인으로 만든다.
 
신앙 안에서도 기도훈련, 제자훈련, 영성훈련 등을 통해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숙한 신앙인을 만든다. 과정은 힘들지만 훈련을 통해서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들을 훈련시키시는 것이다. 그 훈련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운 섭리가 있다.
 
모세는 왕자로서 40년을 지냈다. 지도자가 가져야 할 리더십을 배웠다. 또 광야로 도망가서 40년을 시내광야의 목동으로 지냈다. 후회와 포기의 시간을 지냈다. 황량한 광야에서 날마다 자기의 연약함을 비관하며 절망에 젖었던 세월을 살았다. 처절한 실패의 경험을 통해 전적으로 하나님의 붙드심에 자신을 맡기는 훈련을 했다. 광야의 훈련을 거치면서 겸손과 온유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 시간들은 그냥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시려고 예비하신 훈련시간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골리앗에게 나아가는 다윗에게 사울왕은 자신의 투구, 갑옷, 칼을 준다. 다윗은 그 창과 칼과 방패를 벗어버린다. 그리고 시냇가에 매끄러운 조약돌 다섯 개를 골라 쥐고, 자기가 양을 칠 때 사용하던 물매를 잡고, 골리앗에게 나아간다.
 
당시 고대 근동에는 물맷돌을 던지는 부대가 있었다. 이 돌에 맞으면 두개골이 부서지거나 뼈가 부서지는 치명상을 입는다. 목동들도 양을 지키며 양들을 공격하는 맹수를 공격하는 무기로 물맷돌을 던지는 훈련을 했다. 다윗에게 있어서 물맷돌은 사울의 칼이나 창보다 더 익숙하고 잘 훈련된 무기였다. 골리앗을 향해 빨리 달리며 던져서 명중시킬 수 있을 정도로 잘 훈련된 무기였다(48∼49).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은사를 주신다. 우리가 깨닫든지, 못 깨닫든지 나만의 은사를 주셨다. 우리는 그 은사를 계발해야 한다. 훈련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기도와 찬송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평범한 신앙의 도구일 수도 있다. 반복된 신앙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승리의 물맷돌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능력의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잘 훈련되고 준비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일어나는 영적 전쟁터에서 다윗처럼 악한 영, 영적 골리앗을 향해 승리의 물맷돌을 던져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해성 목사
/거성교회


금-나의 평생에
본문 : 시 146:1~5
찬송 : 312장

시편 146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치고 있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노래하라'는 뜻이다. 나의 평생에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인가?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다.
 
본문 2절에 보면.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나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음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절과 2절에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구절이 세 번 나오는데 시인은 이중적으로 찬양을 강조하고 있다. 찬송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하기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한다.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없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모든 것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고백할 때 비로소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남은 생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으로 가득 채우시길 바란다.
 
다음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일이다.
 
본문 3절에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고 했다. 시인은 인간의 유한성을 언급하며 인간을 의지하지 말라고 한다. 반면에 하나님의 무한성과 전능성을 부각시키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만물의 창조주시고,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며,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나그네를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을 굽게 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시인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능력이신 하나님 한 분만으로 감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평생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만족한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일이다.
 
본문 5절에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다. 여기서 '야곱의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보호를 베푸시며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일컫는 호칭이다. 하나님이 소망의 근원이시고, 예수님은 소망의 채널이시며, 성령은 소망의 능력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할 일은 많은데 세월이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한다. 허락받은 시간인 평생에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평생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게 하옵소서. 그래서 후회할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만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세일 목사
/고산동부교회


토-좋은 씨앗으로 살기
본문 : 마 13:24~30
찬송 : 312장
 
모내기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무성하게 자라있는 모습을 보며, 벼만큼 잘 자라는 작물도 없다는 생각과 함께 부러움이 사무친다.
 
자라남, 그것은 좋은 씨앗의 필수조건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가 자라고 있고, 또 자랄 수 있으며, 가능성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씨앗이 자라나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건 좋은 씨앗이 아니라 죽은 씨앗일 뿐이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고 자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잃어버리면 주님께서 우리를 좋은 씨앗으로 부르신 그 부름의 목적에 응할 수 없는 것이다.
 
세월의 오래됨은 우리가 몸의 성장이 멈춘 것을 당연시하듯, 우리의 성장을 무디게 한다. 그러나 좋은 씨앗인 우리는 더욱 성숙해지고, 온전해지며, 계속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삶이 열매들로 풍성해질 수 있다는 꿈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 전 필자의 지역에 우박이 쏟아져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우박 피해를 입은 채소는 대만 남고 잎이 싹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줄기에서 다시 잎이 나 풍성해졌다. 생명의 위대함에 갈채가 절로 나왔다.
 
좋은 씨앗인 우리는 자라남의 생명력을 잃어버릴 수 없다. 우리가 좋은 씨앗으로 자라나고 열매 맺기 원하는 하나님의 믿음과 기대에 부응하며 좋은 씨앗이 되기 위해 사모함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삶이 녹록치 않다. 가라지가 있기 때문이다. 가라지는 농작물의 양분을 뺏어 먹으며 성장을 방해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가라지와 양립하며 살아간다. 세상은 불의함, 탐욕이 득세하고 있다. 우리의 내면 또한 여전히 가라지가 기승을 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씨앗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며, 선한 유전자가 우리 안에 있다. 비굴한 세상과 자신에 대해 푸념할 순 있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자라남의 생명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가라지가 득세한다고 꿈과 비전을 포기할 순 없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선의 부재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씨앗의 생명력을 믿으며 더욱 선하고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진력해야 한다. 좋은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는 그날, 가라지는 흩날리는 재처럼 사라질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어떤 유혹과 갈등과 난관에도 좋은 씨앗의 자라남을 포기하지 말게 하시고, 선하고 좋은 열매로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치석 목사
/생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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