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 최고의 시절

[ 데스크창 ] 데스크창

안홍철 편집국장 hcahn@pckworld.com
2014년 07월 29일(화) 13:33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도입부입니다. 이 소설은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촉발한 프랑스 시민혁명의 전후를 시대적 배경으로 런던과 파리, 두 도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프랑스 귀족들, 소위 기득권층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해 혁명은 시작되지만, 혁명의 본질 대신 복수심에 사로잡힌 대중들에 의해 혁명은 단두대인 기요틴(guillotine)에서 광기 어린 피의 잔치로 변해갑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 희망의 봄이면서 절망의 겨울'은 숭고함과 광기라는 혁명의 양면성을 하나로 포괄하는 표현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현재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기도 합니다. 파리와 런던, 지금은 비행기로 한 시간, 고속열차로 두 시간이면 두 도시를 오갈 수 있지만,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8세기엔 거친 바다를 건너야 하는 먼 나라였을 겁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런던에서 최고의 시대를 보냈다면 한 통의 편지로 인해 건너간 파리에서 그들은 최악의 시대를 보냅니다. 소설 첫 머리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는 동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나 양극단의 상황이 공존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선 폭격이 이어져 무고한 생명이 숨지고 있고, 어느 한 곳에선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의 젖을 빨며 새록 새록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문학으로서의 가치 뿐 아니라 당시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역사서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세대를 뛰어넘어 후세까지 전해지는 고전 문학의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운 프랑스 혁명은 발생한 연도와 배경, 루이 16세의 처형 등 결과만을 암기했을 뿐입니다. 소설은 프랑스 혁명 속에서 개개인의 삶은 어떠 했는지를 묘사합니다. 왕정이 종말을 맞이하고 시민의회가 구성되고 자코뱅 파, 로베스 피에르의 이야기가 아니라 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시민들은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았으며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있는 이들은 어떤 인물들이었는지 또 이후 시민들은 귀족들과 이전의 지배세력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지를 등장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따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고 각종 정보와 루머가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이른바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소설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느리지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저를 비롯한 본보의 기자들은 신문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꿈과 열정,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휴머니즘적인 삶의 가치를 발굴하고 그것을 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의 목소리가 총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독자들에게 얼마나 큰 울림으로 다가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미디어 지형이 급박하게 변하는 시대에 종이 신문의 영향력이 날로 떨어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는 최고의 시절에 대한 간절함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찰스 디킨스가 묘사한 것처럼 이 시대는 최고일 수도, 최악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동안 한국교회에도 최고의 시절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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