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고일호 목사
2014년 07월 29일(화) 13:30

목회자 여럿이 모이면 누가 식사비를 내는가? 그 중에서 가장 큰 교회를 담임하는 사람이 대접하는 경우가 많다. 몇 주 전 선교후원 이사회를 마친 후도 마찬가지였다. 늘 앞장서서 대접하는 분이 좋은 곳으로 일행을 초청해 주었다. 먹음직스런 뷔페가 차려진 식당이었다. 접시를 들고 음식을 담고 있는데 내 앞에 정복 차림의 불교 승려가 서 있었다. 순간 호기심이 생겼다. '절에서는 육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 데, 저 사람은 무엇을 먹을까?'

그런데 그 승려의 접시 위에 올라가는 음식을 보면서 나는 당황했다. 그는 회 코너로 가서 거침없이 새우, 참치, 광어와 같은 회를 담아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자리였다. 누가 봐도 소위 '스님'이라고 한 눈에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복장이었다. 그런데 어찌 저리도 당당하게 육식을 하는 것일까? 나는 그 뻔뻔함에 화도 났고, 같은 성직자라는 입장에서 부끄럽기도 했다. 식사를 하는 좌중(座衆)이 나를 보고 함께 욕하는 것 같았다. '저런 돌팔이 같으니!'라고.

혼란스런 마음을 수습하면서 자리에 와서 앞 서 본 사건(?)을 전했다. 그 말에 한 동료가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 주었다. 불교 승려들이 술과 고기를 먹는 것은 오래 전 일이고, 음주육식을 금하는 계율도 풀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더 상처를 입었다. 용맹정진 수도에 힘써야 할 사람들이 오래 오래 지켜오던 전통을 깨면서까지 세속적인 만족과 즐거움을 추구하다니. 이 사람들 정말 돌팔이가 맞네. 중노릇하기 쉽겠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허탈한 배신감으로 혼자 중얼대며 욕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았다. 왜 나는 남의 일에 그렇게 화를 내었던가? 내가 한 일도 아닌데. 그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맨날 얻어터지는 것이 기독교요, 목사다. 내가 못하면 남이라도 잘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내 앞에 서 있던 불교 승려에게 투영되었을 것이다. '당신들이라도 반듯한 성직자의 모습, 수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세요.' 하지만 나의 기대는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음식 한 접시 가지고 너무 오버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육식을 하는 것이 승려생활의 본질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그 사람이 득도의 경지에 오르고 모든 불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불교계의 큰 인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거침없이 회를 담고, 초장을 떠가는 그의 모습이 내 눈에는 '돌팔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또한 돌팔이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못된다. 내 눈에 들보가 가득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 더구나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정말 돌팔이가 아닌가? 성직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신자들의 마음에 못을 박고 배신감으로 잠 못 이루게 하는 그런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고 배신감을 느끼는 데는 민감하다. 그러나 우리로 인해 교회와 신자들이 받을 고통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한다. 이제 정말 돌팔이 같은 짓은 하지 말자고.

고일호 / 목사 ㆍ 영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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