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항구에서 시련 속에 타오른 '신앙의 등불'을 마주하다

[ 교계 ] 초기 기독교 역사 간직한 인천순례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4년 07월 29일(화) 11:22
   

인천은 한국 기독교 선교의 첫 역사를 장식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인천을 '한국기독교 선교의 시발지'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도 그럴것이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난 후 1885년 4월 5일 우리나라의 공식 첫 해외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항(지금의 인천항)을 통해 한반도에 발을 발을 디뎠고, 그들은 이곳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면서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선교사가 인천항을 통해 들어왔고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여 130여 년 동안 한국의 기독교 역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복음의 항구' 인천, 이렇게 보면 인천의 시작이 곧 기독교 역사의 시작이 아닐까.

지난 18일 국내성지순례 관광지 개발을 적극 추진 중인 한국드림 관광주식회사(회장:이정환ㆍ한국관광협동조합 이사장)가 인천시(시장:유정복)와 인천도시공사(사장:유영성)와 공동으로 마련한 '인천기독교성지순례 상품개발 2차 팸투어'에는 종교 지도자를 비롯해 언론인 등 50여 명이 참여해, 인천 중구 개항장 주변과 강화도 일대의 교회를 비롯해 주변 관광지를 방문 기독교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더 나아가 새로운 선교의 도전을 받았다.

이번 순례의 여정은 강화도 최초의 교회인 '교산교회'를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민족의 수난기였던 19세기 말, 여러 차례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서양인을 증오하던 강화인들은 선교사의 방문을 강하게 거부했다.

1892년 제물포구역 책임자로 부임한 내리교회 담임이었던 존스 선교사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강화를 찾았지만 입성을 거부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역 유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리교회 성도였던) 이승환과 그의 어머니에게 선상세례를 주게 되면서 강화에 최초의 복음의 겨자씨가 떨어지게 됐다.

이후 세례를 반대했던 유학자 김상임도 개종해 교산교회의 최초의 전도사가 되었고 1년 후엔 강화 전체 지역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난해 창립 120주년을 맞이한 교산교회는 선교 초창기 강화의 복음화를 위해 애쓴 교인들의 희생과 발자취를 기리기 위해 강화 초대기독교선교역사관을 개관했다.

이곳에서는 강화 초대교인들의 복음을 위한 열정과 헌신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지금의 크리스찬들이 다시금 '복음에 빚진 자'로서의 사명에 책임을 느끼며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근현대사의 시련 속에서도 신앙의 등불을 밝히며 지역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해오고 있는 강화의 아름다운 교회들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이 하나 더 있다면, '강화평화전망대'일 것이다.

지난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발발한 한반도 전쟁 그리고 남북 분단의 아픔과 이산가족의 애환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강화평화전망대는 북한땅까지 불과 2.3km의 거리밖에 되지 않고 망원경으로는 북한 주민의 생활모습까지 아주 자세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산가족의 왕래가 아주 잦다고.

이곳에서 순례 참석자들은 두 손 모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했으며 지금도 헤어진 가족들의 생사여부 조차 확인할 길이 없는 이산 가족들의 슬픔을 애도했다.

한편 오는 9월 19일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개최되는 인천에 45개국 아시안인이 모여들게 된다. 제2의 개항시대를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인천에서 한국교회의 새로운 선교의 도전이 시작됐다.

이미 인천 시내의 60여개 교회가 연합해 대회를 적극 지원하고 인천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대에 벅차 있다.

순례 참석자들도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을 방문해 아시아경기를 통해 기독교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세계선교와 인천복음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또 한번 기도했다.

순례의 마지막 길은 아펜젤러 선교사가 서울에 올라갈 때까지 제물포에 머물면서 세운 '내리교회'다. 내리교회는 인천항을 통해 첫 발을 내딘 아펜젤러 선교사가 작은 초가집을 빌려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이 초가집이 내리교회의 모태가 된다.

이 곳에서는 130년 동안 이어진 기독교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을 상시 전시해 놓았다. 구한말 기독교가 한국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도 살필 수 있어 기독교와 한국의 격동기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인천이 개항한지 130여 년. 개항과 동시에 선교사들은 인천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천을 '선교의 주춧돌'로 삼으며 전 지역으로 복음의 겨자씨를 뿌려 한국의 복음화를 이뤄냈고, 이제 그 겨자씨는 다시 세계 만방으로 흩어져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서고 있다.

기독교의 관문이자 세계 복음화의 출구가 된 인천은 오늘도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온 세상에 기쁜 소식을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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