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어떤 때인가?"

[ 논단 ]

정영택 목사
2014년 07월 28일(월) 17:58

정영택 목사
부총회장ㆍ경주제일교회

'지금'을 강조하는 이 글의 제목은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재촉할 때나 상대가 주어진 일에 성실히 임하지 않을 때 흔히 하는 말이지만, 필자는 세상의 목표나 가치보다 '지금'이라는 순간을 더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 삼등분적으로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시간은 쉬지 않고 과거화되며, 미래의 시간 역시 쉬지 않고 현재화되기에 그야말로 '지금' 그리고 '여기서'가 매우 중요하다.

지금 잘못하면 금방 후회하게 되고, 어두운 미래가 성큼 다가오며, 지금 잘 하면 의미 있고 보다 밝은 미래에 좀더 다가서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떤 자리에 어떻게 있는가? '지금'만이 아니라 언제나 영원한 지금으로 서 있어야만 한다.

필자 역시 많은 부족함과 한계를 갖고 있지만, 여러 상념 속에서 나름대로 기도하면서 우리의 지금을 생각해 보면, 첫째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월호의 아픔 속에 지금을 보내고 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100일 이상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우리 삶의 구석구석은 세월호를 포함해 그와 유사한 징후들로 여전히 힘들어 하고 있다. 어떻게 극복해야 좋을지, 많은 기도와 격려하는 힘이 필요하다.

둘째, 우리는 지금 보편적 범죄 의식에 빠져있다. '누구나가 어느 정도의 죄는 짓기에 그런 정도의 죄는 이렇게 저렇게 넘어갈 수 있다'는 식의 사고이다.

가령 주민등록을 위장전입하는 것, 거래시 이면계약서를 쓰는 것, 개인의 이익과 관련해 봉투를 주거나 받는 것 등에 대해 "무엇인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모두가 인간 사는데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인데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는 것이다. 그래서 "청문회 때문에 지도자를 세우지 못한다"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불법적 발상이 판을 치고 있다. 더욱이 이런 풍조에 교회 마저도 물들어 가고 있는 것같아 걱정이 크다.

셋째, 지금은 개혁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위기다", "개혁이 절실하다",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금 개혁'의 용기를 갖지는 않는다. "조금 있다가", "내 임기가 끝나면", "너무 서두르지 말고", "부작용이 심해서" 등 온갖 핑계를 갖다 붙여 개혁의 때를 놓치고 있다.

"과연 지금이 어떤 때인가?"

이 질문은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지금이 옷을 탐하고 금을 탐할 때냐고 질책하고, 나아만의 치료를 기회로 자기 이익을 챙긴 것에 대해 묻는 말이다. 이 일로 게하시는 문둥병자가 되고 말았다. 지금 한국교회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 분별치 못한 어리석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어느 때이며, 어느 자리에서 기도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할 따름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세월호의 아픔이 있고 죄의 무감각 속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자성할 일은 '바로 지금이 언제나 개혁을 해야하는 지금'이라는 것이다. 핑계하지 말고, 미루지 말고, 탓하지 말고, 지금 내게 있어서, 우리 교회에서, 사회에서 개혁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 개혁에 지금 용기 있게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게하시에게 생겨난 문둥병과 같은 부끄러움이 우리에게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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