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통로 도화교회 이야기

[ 교단 ]

박성흠 기자 jobin@pckworld.com
2014년 07월 28일(월) 16:49

   
▲ 담임 문순국 목사.
교회는 축복의 통로여야 한다는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기독교인은 없겠다. 그렇지만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과연 축복의 통로라고 인정받는 교회는 또 얼마나 될까.

마을 사람들로부터 '축복의 통로'로 인정받는 충주노회 도화교회(문순국 목사 시무)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따뜻해 지고, 예수쟁이로 사는 것에 대한 자부심마저 갖게 한다.

충북 충주와 제천 그리고 강원도 원주를 잇는 삼각지대 백운마을에 자리한 도화교회는 70명 제적 교인에 50여 명이 출석하는 전형적인 농촌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제천 명락교회(이동성 목사 시무)가 1999년 개척한 도화교회는 2002년 7월 현 담임 문순국 목사가 부임하면서 환골탈태했다.

문 목사 부부(부인 이명숙)가 네 자녀를 이끌고 도화교회에 부임했을 때는 다섯 명의 교인이 있었다. 수원에서 부교역자로 생활하던 문 목사는 부인이 넷째 아기를 출산하면서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아내와 아기를 살려주시면 자녀 중 하나는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겠다"고 기도했다. 아내와 아기가 죽음의 문턱을 살아 넘어 나온 직후 도화교회로부터 청빙이 들어왔다. 미자립 시골 교회라고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혼수상태의 아내를 두고 했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 목사는 "아내가 살아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목회할 곳이 있으니 오직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었다"고 회고했다.

   
▲ 도화교회 예배당 모습.
백운에서의 생활은 도시에서의 그것과 달랐다. 젖먹이 막내를 빼고 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마을사람들은 열렬하게 환영했다. 전교생이 57명에 불과했는데 문 목사 자녀가 들어가면서 60명이 됐고 폐교위기를 벗어나게 된 때문이었다. 아직 지역아동센터가 법제화되기 이전에 문 목사 부부는 자녀들이 데리고 오는 친구들에게 사택을 내주다시피하면서 마을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중국선교사가 되기 위해 대만에서 받은 훈련은 문 목사 부부에게 훌륭한 교재가 되었다. 마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눈과 귀를 열고 관심을 기울이니 그들의 필요가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토요일에 통학버스를 운행하는 문제로 마을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는데 문 목사가 교회 승합차를 이용해 토요일에 학교가는 학생들을 태워주겠다고 제안했다. 학교도 마을사람들도 모두 환영한 것은 당연했다.

교회 앞을 걸어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그냥 보내지 않고 무슨 일로 걸어가는지 자초지종을 물은 끝에 보건지소에 다니는 것을 알게 되어 정기적으로 그들을 보건지소로 태워주는 일을 했다. 마을에서도 천덕꾸러기였던 한 할머니는 큰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고 역시나 문 목사가 그녀를 돌본 사실이 마을에 알려졌다.

자녀들을 통해 만난 마을의 아이들은 교회에서 놀고 먹고 공부했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교회에 모여서 한글(문해)학교를 열고 글을 읽게 됐다. 어느 틈에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젊은 새댁도 한글학교에 들어와 식구가 됐고, 문 목사는 그녀를 놓지지 않고 영어를 가르치도록 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한글학교에서, 그녀의 자녀는 지역아동센터에서 그렇게 3대가 모두 한 교회에서 공부하고 봉사하는 성도가 되었다.

   
▲ 도화교회 예배당에 잇대어 있는 지역아동공부방.
전도의 접촉점을 찾아낸 문 목사 부부의 눈과 귀가 있었기 때문에 도화교회는 3년만에 자립대상교회에서 자립교회로 대상이라는 글자를 떼어 버렸다. 명락교회는 문 목사를 청빙하면서 3년간 목회자 사례비를 지원하기로 했고 그 약속한 3년만에 도화교회는 자립한 것이다. 최근 문 목사는 명락교회 초청으로 교회를 방문해 설교하고 "명락교회의 자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백운에도 최근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백운마을로 귀농 귀촌하는 은퇴자들이 늘어나면서 교인들에게도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교회 옆에 살던 민병익 사장(협성특수시멘트)은 비기독교인이면서도 지역아동센터 건축을 위해 부지를 내주었고, 아동센터 건축과 예배당 리모델링, 산촌유학센터 건축에는 최승현 사장(건축가)이 나서서 내 일처럼 도왔다. 다섯 명의 장로들은 5개 구역의 구역장을 맡아 담임목사가 했던 그것처럼 섬기고 나누는 일에 진력을 다한다는 것이 문 목사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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