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구원

[ 성서마당 ]

김병모 교수
2014년 07월 25일(금) 13:30

믿음과 생활은 하나다

김병모 교수
호남신학대학교ㆍ신약학

 
많은 사람들이 한 때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고 교회를 다니다가 타종교로 개종하거나, 이단으로 넘어가거나, 무종교로 회귀한다. 또는 교회를 떠나지는 않더라도 한 발은 교회에, 다른 발은 세상에 두고 산다. 이렇게 살더라도 한 때나마 신앙을 고백했기 때문에 구원 받게 될까? 아니면 더 이상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인 거룩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구원 받지 못하게 될까? 우리의 삶과 구원은 서로 어느 정도로 관련되어 있을까?

전자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제시하는 근거 중의 하나는 고린도전서 3장 10~17절 말씀이다. 그러나 이 단락이 다루는 문제는 신자의 구원 문제가 아니라 사역자의 사역의 질 문제이다. 제대로 일한 사역자는, 사역의 재료(금, 은, 보석)가 좋은 사역자는, 그래서 그것이 불에 끄떡하지 않는 사역자는 상을 받게 되고, 반면에 제대로 일하지 않은 사역자는, 사역의 재료(나무, 풀, 짚)가 나쁜 사역자는, 그래서 그것이 불에 타 없어지는 사역자는 해나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사역자는 사역의 질에 따라 상(칭찬, 인정) 또는 벌(책망, 수치)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은 어떨까? 이 경우에는 둘 다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둘 다 구원 받는다(고전 3:17 참조). 그러나 만약 사역자가 단지 사역의 질뿐만 아니라 올바른 믿음까지도 잃어버린다면, 그는 거짓 사도(고후 11:13)와 사탄의 일꾼(11:15)이 되고 당연히 구원도 받지 못하게 된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도 3장 10~17절과 비슷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사역자의 사역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과 삶에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각자가 선악 간에 행한 대로 상 또는 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기본적으로 믿음으로 산다면 모두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만약 그리스도인이 기본적인 믿음까지도 잃어버린다면, 그리고 계속 불의하게 산다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된다.(고전 6:8~10).

우리의 삶과 구원은 서로 어느 정도로 관련돼 있을까? 바울은 로마서 2장 5~10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영생을 주시고,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진노를 내리신다." 이때 바울은 선을 행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기에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기에 악을 행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이 바울의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해보자. 우리는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과 신앙고백이 뿌리라면, 우리의 생활과 삶은 열매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생활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오직 삶에서 열매를 맺는 믿음만이 살아있는 믿음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믿음ㆍ신앙고백과 생활ㆍ삶을 분리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하다. 안타깝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는 언제쯤에야 성서의 가르침대로 믿음과 생활을 하나로 인식하고 살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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