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과 청년 (3)청년선교 이렇게

[ 특집 ]

전경호 목사
2014년 07월 25일(금) 11:32

전경호 목사
청년목회자연합 공동대표


몇 년 전부터 한국교회는 다음세대에 대한 아주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사실 늦어도 한참 늦은 시점이지만 지난 25년 동안 청소년과 청년 사역에 헌신한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제라도 그런 경각심이 생겼다는 것에 내심 반가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혹시나 했던 마음은 역시나'하는 탄식으로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각종 세미나가 열리고,청년세대를 위해서 준비했다는 각종 집회가 난무했지만 그 어느 것도 청년세대에게 어필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행사가 청년세대에 대한 이해와 필요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실적 쌓기를 위한 전시행정적인 행사들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청년들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동원하는 불편부당한 일들이 난무하면서 오히려 청년사역의 몰락을 부추기는 역효과가 되고 말았다.

청년세대의 몰락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밖으로는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청년대학생들이 일어날 때 교회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고,오히려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은 군사정권의 하수인과 같은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 하나의 원인이요,내부적으로는 대학입시 과열현상에 놀라서 너무나 잘 되고 있었던 중고등부 사역을 대폭 축소해서 주일예배와 공과학습만을 남기고 모든 사역을 포기한 것이 또 하나의 원인이다. 중고등부 6년 동안의 신앙의 공백은 그들이 대학생이 되는 순간에 교회를 등지는 사태로 발전하였고,결국 10년 뒤인 1990년대에는 청년대학부의 붕괴현상을 가져왔다. 그리고 10년 뒤인 2000년대에는 30대가,또 다시 10년 뒤인 2010년대에는 40대가 교회를 등지고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세대의 선교적 접근은 교회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청년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고 있는 교회 내부적인 요인들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간 것이 아니라 교회가 청년들을 몰아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청년사역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청년목회자연합(Young2080)에서 발행한 청년사역의 교과서 '청년사역,맨땅에 헤딩하지 말자!'(홍성사 간행,고직한 저)에는 '청년대학부의 10대 현상'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는 '철새 교역자'다. 대부분의 청년사역자는 전임사역자가 아니라 파트 사역자이고,그나마 전임사역자라 하더라도 바쁘고,자주 교체되고,당회와 청년들 사이에 낀 목회자가 바로 청년사역자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사역에 몰두하지 못하고,자기 생존에 급급한 모습이다. 둘째는 '마당쇠 청년들'이다. 교사와 찬양대원,성가대,청년부 임원으로 정신없이 1인 다역(多役)의 청년들은 청년부 모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지쳐서 자신들의 모임을 진행할 여력이 없다. 셋째는 '빠져나간 기둥들'이다. 그나마 청년부에 있어서 기둥 같은 인물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실망을 하거나 상처를 받고 선교단체와 대형교회,선교지로 떠나게 된다. 넷째는 '터줏대감 증후군'이다. 그 작은 청년공동체 안에서도 기수 따지고,잘못된 군대문화나 자신들만의 전통을 고수하며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뺀질거리는 청년들이 있다. 특히 교회 중직자의 자녀들에게 이런 현상이 많다. 다섯째는 '패잔병 증후군'이다. 이성교제로 얽히고 설키고,학력,학벌 차이로 어울리지 못하고,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청년들이 굉장히 많다. 여섯째로 '허수아비 청년들'이다. 교회에서 청년대학부는 주일학교만큼도 힘이 없다. 주일학교는 교사인 집사들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교회에서 목소리가 크다. 담임목사도 주일학교 교사회의 발언을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청년들의 발언은 쉽게 묵살된다. 일곱째,'만년 야당 청년들'이다. 그동안 교회생활을 통해서 청년들은 상처 많고,불만 많고,버릇없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 여덞째는 '범생이들'이다. 교회에 별 불만 없이 잘 적응하고 있는 청년들을 보면 노인 같고,(모)범생이 같고,바보 같은 이른바 성실한 청년들이다. 아홉 번째,'불신풍조 임원들'이다. 교역자에 대한 불신 때문에 지나친 피해의식,보호의식,방어의식으로 무장되어있는 임원들이 있다. 이런 현상은 청년대학부 교역자들이 자주 교체되고,전문성은 결여된 상태로 교역자의 권위만 강조하는 교역자로 인해 생긴 것이다. 교역자가 바뀔 때마다 청년부의 모든 환경과 방침이 달라지니까 청년들은 더 이상 교역자들만 믿고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청년부는 교역자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청년이 지킨다. 교역자는 허무는 자일뿐이다'라는 생각이 팽배해 새로 사역자가 오면 길들이기부터 하기 시작한다. 특히 열심히 하고자 하는 임원들이 있는 교회라면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마지막으로 '달동네 청년들'이다. 자원난,인재난,시설 및 공간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을 표현한 것이다.

이상의 10가지 현상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청년들은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다. 담임목사와 당회의 독재 내지는 전횡으로 인해 소통부재가 되어버린 교회,그 여파로 청년들이나 청년부에 대한 모든 결정에 청년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못하고,세상의 잘못된 재벌들도 하지 않는 담임목사의 부자세습이나 교역자의 성적 타락과 공금횡령의 모습들은 청년선교의 길을 교회 스스로가 막은 꼴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은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서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청년들은 성경말씀 그대로 살고 사역하는 사역자를 보고 싶어 한다. 강대상에서의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는 지도자가 자신들을 지도해 주기를 소망한다. 또한 청년들을 목회의 수단이 아니라 목회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역자를 기대한다.

한마디로,교회가 필요할 때 부려먹기 좋은 청년들을 길러내는 사역이 아니라 교회가 지상명령의 차원에서 청년들을 사랑으로 섬겨주고,청년들의 삶의 자리를 찾아와 주고,청년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해주는 사역이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끼워 맞추기 식의 청년사역자 배치가 아니라 청년사역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청년들과 기쁘게 소통하며 사역하는 사역자,그것도 이것 저것 다른 역할에 찌들어서 정작 청년들에게는 시간과 관심을 주기 어려운 교역자가 아니라 온 마음과 정성을 청년들에게 쏟아낼 수 있는 청년 사역자를 원한다. 벌써 10년 넘게 청년대학부를 위한 교재 하나 변변한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교단 교육부의 대안 없는 모습에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교단 교육부에서 청년세대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청년세대에 맞는 교육방법과 교육교재가 출판되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 때부터 올바른 신앙교육을 통해 기본적인 신앙지식을 배우고,그 신앙지식에 따른 신앙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양육체계가 있기를 원한다.

이런 내적인 변화를 통해 현재 교회에 소속된 청년대학생들이 자신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교회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질 때 그들은 비로소 자신이 믿는 하나님과 자신의 몸된 교회를 자랑하며,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의 실적을 위한 임시방편과 임기웅변식의 사역이 아니라 한 영혼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노력,청년사역이 무너지게 된 시점인 중고등부 사역부터 파트타임 사역자가 아니라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전임사역자를 임명하는 적극적이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10년,또는 20년은 새로운 역사를 이루는 희망의 시대가 될 것이다. 청년은 교회의 미래가 아니라 아주 중요한 현재임을 잊지 말고 한국교회의 획기적이고 전향적인 노력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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