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가야 할 길, 루터에게서 찾다

[ 기고 ]

권용근 총장
2014년 07월 24일(목) 11:16

교회의 침체 소식과 목회환경이 어렵다는 소식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들만의 고민은 아니다. 신학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총장들의 경우도 교회의 부흥과 현장에 합당한 사역자들을 키우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본교단 7개 신학대학교 총장협의회와 총회신학교육부는 한국교회를 위한 신학교육의 활로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고심하던 중 중세교회의 활로를 열었던 루터의 종교개혁 자리들을 탐방키로 했다. 특히 2017년에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기에 7개 신학대학교 총장(권용근, 김명용, 김명찬, 노영상(서기), 안주훈, 오덕호, 최무열)들과 신학교육부장 홍순화 목사와 총무 김치성 목사까지 동참하여 신학교들의 현안 문제를 한주 내내 같이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6월 30일 새벽 1시 20분 인천공항을 떠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 후 루터가 가족과 함께 살았던 아이제나흐와 그 부근에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을 둘러보았다. 그 성은 루터가 교황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 프리드리히 성주가 은신처로 제공했던 곳으로 이곳에서 루터는 쉽게 읽을 수 있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종교개혁의 초석을 놓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말씀을 아름답게 표현하였기에 독일어 발전에도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삶의 고비를 만나고 궁지에 몰려 은신한 채 번역작업을 하며 보낸 평범한 일상이 세계를 변화 시키는 단초가 될 줄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다음엔 아이제나흐에서 에어푸르트로 이동했다. 루터는 이곳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그 교회의 부속 수도원에서 고행과 수행을 했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말씀 안에서 길을 찾을 수 있었던 루터를 보며 신학교육이 어느 길로 가야할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다음 이동한 아이슬레벤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루터가 태어나고 죽은 집이 있는 곳이다. 루터의 생가에 있는 전시실에는 루터의 유물들이 잘 보관되어 루터의 지나간 편린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지나간 역사를 너무나 소홀히 다루는 우리의 모습을 자성키도 했다.
 
그 도시를 떠나 우리 일행은 다시 할레로 이동을 했다. 할레는 1544년 처음으로 종교개혁을 받아들였던 도시로서 루터는 할레대학 교수생활을 하며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18세기에는 할레를 중심으로 일어난 경건주의 운동이 무기력해졌던 독일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던 것을 생각하며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새로운 신앙의 불길이 일어나길 기도했다. 이후 우리는 루터의 95개 조항 반박문으로 유명한 비텐베르크란 도시로 이동하여 가톨릭교회에 반대하여 교회 문에 붙어 있는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는 어느 문판에 어떤 개혁의 조항들을 써 붙여야 할지를 떠올려 봤다.
 
일정의 막바지에 우리 일행은 루터 이전의 개혁자인 얀 후스의 도시 프라하를 방문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한 주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늘 한국교회와 신학교육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를 많이 논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루터는 중세교회가 직면한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함으로 활로를 열었듯이 오늘 한국교회와 신학교육도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에릭슨은 루터는 자신이 직면한 문제들을 말씀을 통해 고침으로 병든 중세를 구원했다고 평가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의 병은 못 보면서 남의 병을 고치겠다고 설레발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회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 먼저 자신의 문제를 말씀으로 해결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강단과 교단에 서게 될 때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갈 수 있을 것 같다.  

권용근 총장(영남신대, 총장협의회장)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