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7월 28일~8월 2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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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24일(목) 10:50

월-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본문 : 약 2:17~26
찬송 : 310장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인가? 보여지는 어디까지가 믿음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적인 모습일까? 본문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한다.
 
행함을 강조하는 것인가? 믿음을 강조하는 것인가? 우리 주변에도 행동할 때를 보면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내용적으로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믿음이 아주 대단한 분 같은데 평소 행동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둘 중 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본문에서 두 사람의 예를 들어서 혼란을 겪는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강조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리는 엄청난 행동으로 하나님을 놀라게 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통하여 강조하시는 것은 이삭을 드릴 수 있었던 아브라함의 행동이 믿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기생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안전한 도피를 도운 겻은 환란 날에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목숨을 건 행동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결국 믿음을 가진 자는 어떤 경우에도 믿음대로 행동한다. 반대로 아무리 대단한 행동을 해도 자기의 목적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은 믿음이 아니며 하나님도 인정하기 여려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믿음을 주목하신다. 우리는 가끔씩 믿음이 먼저냐, 행동이 먼저냐?를 두고 논쟁을 할 때가 있다. 이런 분들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아직도 잘 모르는 분들이다. 이는 혼돈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무지이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믿음과 행위에 대한 끝없는 논쟁만 할 뿐 정작 믿음의 본질을 모른체 덮어두고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고 논쟁으로만 자신은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나쁜 습관들만 가지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모든 것의 중심은 믿음이다. 믿음은 어떤 어려움과 불이익, 설사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이라도 믿음의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 믿음이요, 믿음을 가진 우리들이 보여주어야 할 행동이다. 아브라함이, 기생 라합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우리에게도 오직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는 자의 어떤 행위도 하나님은 주목하지 않으신다. 자기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믿음 없는 행동은 응답도 기적도 없다.
 
지금 죽어있는 믿음을 일으키자! 이제부터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믿음으로 실천하자. 오늘 이 믿음으로 이 시대의 아브라함과 라합의 복을 누리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과 라합이 보여준 살아있는 믿음처럼 우리들도 모든 일에 살아있는 믿음으로 행동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례 목사
/한우리횃불교회


화-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말라
본문 : 롬 12:3~8
찬송 : 292장

사람의 말과 행동은 생각에서 시작된다. 마음의 생각이 옳지 못하면 말과 행동도 옳지 못하다. 마음의 생각이 바르면 말과 행동도 바르다. 사도바울은 은혜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은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이전에 '생각조차도' 마땅한 생각에 머물기를 원하신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항상 문제는 되는 것도 마땅한 생각 그 이상의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마땅한 생각에서 멈추면 되는데 그 이상의 생각을 해서 모두를 힘들게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가져할 '마땅한 생각'은 무엇인가?
 
첫째는 주신 은혜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내가 받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 은혜를 잊고 사는 자들이 문제이다. 은혜를 잊은 백성들은 항상 방종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배신했다.
 
둘째는 받은 은사를 따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모든 지체들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주셨다. 각기 다른 은사를 주신 목적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온전함을 이루어 가는 공동체가 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받고 싶은 은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 곧 '받은 은사'를 따라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은사를 인정해야한다. 내가 받은 은사에 감사해야 한다. 남의 은사를 시기질투해도 안된다. 또 남의 은사를 업신여겨도 안된다. 자격 없는 나에게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받은 은사를 따라 서로를 섬기고 교회를 섬겨야 한다.
 
셋째, 마땅한 생각은 즉시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생각이 많아지면 마땅한 생각 앞에서 순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순종은 즉시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즉시' 순종했기 때문이다. 만약 머뭇거리거나 생각이 많았다면 그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마땅한 생각은 즉시 실천해야한다. 때를 놓치면 그 이상의 생각 때문에 불순종하게 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받은 은혜대로 생각하게 하시고 받은 은사를 따라 겸손히 교회를 섬기며 마땅한 생각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창교 목사
/상남교회


수-조금 뿐이라
본문 : 왕상 17:1~16
찬송 : 304장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 때, 온 나라는 죄악에 물들고 백성들도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가뭄이 3년 6개월 동안 이어졌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비롯한 누구에게도 모자람과 부족함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에서도 엘리야 선지자를 훈련시키시고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으로 만들어 가셨다. 하나님께서는 왜 '조금 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해 가시며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조금 뿐이라'고 말하는 때야말로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엘리야는 북왕국 시대 이전의 그 이전의 어떤 왕보다 더 악한 왕 아합과 왕후 이세벨을 상대해야 했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 악한 세력과 맞설 수 있었을까? 사람은 자기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먼저 사용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하지만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밖에 없다. 그 순종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순종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조금 뿐이라'고 말하는 때야말로 기적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물을 조금 가져다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나는 떡이 없고, 통에 가루 한 움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기적은 바로 여기에서 나타났다.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이라는 상황에서 16절 말씀 "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한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풀어주셨다.
 
마지막으로 '조금 뿐이라'라고 말하는 때야말로 기도하게 하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서든, 어떤 환경에서든 기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축복의 사람이다. 부족한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매달리게 된다. 기도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보지 못하는 가운데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환경을 통해서 엘리야가 배운 것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하나님만 바라는 것이었다. 하나님만 바라는 기도야말로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통로임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모자람은 축복이다.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불평과 원망의 환경 속에서도 순종의 은혜를 주소서. 기적이 일어날 수 없는 조건 속에서도 기적을 맛볼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세동 목사
/경주중앙교회


목-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본문 : 계 2:8~11
찬송 : 180장

우리가 삶을 사는 동안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선명하게 설정하고 흔들림이 없는 열정과 순수함으로 정진하는 것은 이상적인 삶의 모습 같기도 하고 때로는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어디에 맞추는가가 중요하다.
 
독일의 나찌즘은 한때 제 4제국의 건설이라는 선명한 목표와 이를 달성할 열광적인 열정을 불태운 때가 있었다. 그러나 잘못된 선명한 목표와 이를 관철하기 위한 열정은 보편적인 삶 안에 있는 진리를 말살하였다. 그들의 열정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을 만들게 되었다. 바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서머나는 이런 열정에 사로잡힌 도시문화를 추구했던 도시 중의 하나이다. 일찍이 대 문호 호머를 배출한 이 도시의 시민의 자긍심은 대단하였다. 그들은 이 도시를 로마의 이상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고 싶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이상이 서머나를 황제숭배의 중심도시로 탈바꿈하게 했다. 로마다움에 배치되는 모든 것을 죄악으로 여기고 순수함을 고양시키기 위해 순수함에 도전하는 세력을 박해했다. 거기에 서머나 교회가 있었다. 이들은 서머나 교회를 환란, 궁핍, 고난, 두려움, 시험, 환란으로 내몰았고 죽음을 각오한 신앙적인 결단이 없이는 서머나 시에서 생존할 수 없도록 교인들을 내몰았다.
 
이제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신앙적인 목표를 선명하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않고는 그들의 신앙을 지킬 수 없었다. 이 생명을 건 선택, 그 칼날 같은 결단의 자리가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의 자리였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 서머나 교회는 신앙을 지켜 칭찬받는 교회가 된다.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거기에 단호한 신앙의 자세를 잃지 않고 오직 주님과 삶과 죽음을 함께 하려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순교자 폴리갑 같은 신앙인들이 있었다.
 
오늘날 고도화 되는 세속적인 자유 경쟁 속에서 점점 신앙적 목표와 사회가 요구하는 현대적인 가치를 공존시킨다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우리를 위해 다가오시는 분이 계신다. 부활의 주님이다. 그 분과의 만남만이 우리의 영혼을 세속주의적 열정에서 주출할 수 있는 방편이다.
 
열정을 불태우는 황제들이 나타날 때마다 신앙적인 바른 목표를 추구한 사람들의 순교가 계속 되었으나 결국 서머나 교회가 추구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순수성과 복음의 열정이 로마에서의 기독교의 승리를 가져 왔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서머나 교회의 열정을 이어받고 있는 것일까?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서머나 교회의 순수한 복음의 열정을 갖고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석은 목사
/용전교회


금-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본문 : 빌 4:4~9
찬송 : 412장

다산 정약용선생이 전라남도 강진 유배지로 갔다. 죄인의 몸이 되어 유배되어가는 모습을 남대문 앞에서 부인과 두 아들이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유배지에서 그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얘들아! 우리는 이제 망한 집안이 되었다. 그렇다고 자포자기 하지 말아라. 너희는 이제야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났다고 생각하거라. 망한 집안의 자식이 글도 못하고 예절도 갖추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 나는 내가 머무는 방 뒷방에 사의재라고 이름을 붙였다. 사의재는 4가지 의로움으로 '생각은 맑게, 몸가짐은 엄숙하게, 말은 과묵하게, 행동은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얘들아! 아무쪼록 학문하는 기회다 생각하고 학문에 힘쓰도록 하여라."
 
비록 유배되어 갔지만 그는 그곳에서 시간을 헛되게 소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곳에서 미래를 준비하며 저술 활동을 한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기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생활한다. 무엇이 사도 바울을 옥중에서 평안하게 하였을까?
 
첫째로 사도 바울의 평강은 기쁨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세상의 기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기쁨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모든 어려운 문제를 덮을 수 있는 기쁨이다. 신령한 기쁨이 있으면 고난 중에도 찬송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내 고난을 해결하시고, 더 큰 영적 기쁨을 주시고, 이기는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평강은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의 마음이 쓸데없는데 기울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바른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평강이다.
 
셋째로, 평강은 함께하시는 것이다.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평강이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고난과 시험이 온다. 극복하되 찬송하면서 영적 기쁨으로 이겨나가는 것이 평강이다. 내가 극복하기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하나님께서 내 대신 해결하시고 나에겐 평강의 마음으로 채우신다. 이것이 옥중에서 사도 바울이 평강의 생활을 한 이유이다.
 
평강을 어떻게 얻을 수 있나? 염려하지 않고 기도하면 평강이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했다. 염려와 생각을 기도로 맡기라. 그러면 염려의 마음을 평강으로 바꾸어주신다. 고난의 자리에서 염려와 근심으로 지내지 말고, 기도로써 평강의 하나님을 만나 기쁨을 회복하고, 함께하시는 하나님,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기쁨을 회복하는 삶으로 나아가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염려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 영적 기쁨 속에 지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진수 목사
/개화동교회


토-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본문 : 민 25:1~9
찬송 : 270장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실 정도로 죄를 미워하신다. 그런데 아담의 본성을 가진 우리는 계속해서 범죄하고 있다.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스라엘 백성은 잠시 행군을 멈추고 싯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여자들과 성관계를 맺었고, 이것은 거짓 신들을 섬기는 제사로 이어졌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음행과 우상숭배의 죄를 동시에 범한 것이다. 그들은 잠시 여유가 있을 때 곧바로 죄의 늪에 빠졌다. 여유로운 시간이 죄의 원인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사람들과 함께 바알신을 예배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셨고 그들을 벌하셨다. "백성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라. 그리고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대낮에 죽여라. 그래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처벌을 확실히 하셨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다. 그럼에도 죄는 계속되었다. 결국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각 집에서 애곡하는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전염병으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을 때에도 정신 차리지 못한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이방여인을 데려다가 나쁜 짓을 하려고 했다. 그때 아론의 두 아들이 그와 이방여인을 죽였다. 그제서야 전염병이 그쳤다. 그 병으로 죽은 백성은 모두 2만 4000명이었다. 죄로 인하여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으나 그 죄의 원인이 완전히 제거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회복되었다.
 
이스라엘이 범한 죄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치셨고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분명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심을 기억하고 죄를 범하지 않도록 확실한 믿음의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매일의 삶을 지켜 보호하여 주소서. 우리 앞에 놓인 죄의 유혹을 믿음으로 이기게 하시고 죄를 범하였을 때 즉시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소서.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을 늘 경외하고 의식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위홍수 목사
/한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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