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교회 (4)교회는 안전한가

[ 특집 ]

배종석 교수
2014년 06월 30일(월) 18:38

"아직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배종석 교수
기독경영연구원 원장ㆍ고려대

세월호 '사건'은 우리의 관점이 활성화되어 표출된 것이며, 이 '관점'도 역사 속에서 뼈아프게 기억될 것이다. 기업의 경영을 다루는 경영학에서는 지난 1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두 가지 관점의 지난한 갈등이 있어왔다. 그 한 가지는 인적 '가치창출'(human 'value creation') 관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인간가치' 창출('human value' creation) 관점이다. 이 두 관점의 영어 표현은 세 단어로 동일한 데, 어떻게 묶이느냐에 따라서 상반된 관점을 형성한다. 전자는 가치창출(value creation)이 묶이고 사람은 이것을 이루어가는 수단적 의미로 활용되는 반면, 후자는 인간가치(human value)가 묶여 인간 존엄성이 강조되어 이를 창출하는데 무게가 실린다.

경영을 바람직한 성과를 이루기 위한 목적(purpose), 과정(process) 및 사람(people)이라는 3P의 상호작용이라고 정의한다면, 위의 두 관점에 따라 이 3P는 매우 상이한 성격을 가지게 된다. 우선 인적 가치창출 관점에서는 목적(purpose)이 너무 좁거나, 단일 차원이거나, 혹은 수단이 목적이 되어 부의 창출, 이익이나 효용의 극대화, 효율성 증대 등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는 다른 많은 것들을 수단화 시키거나 왜곡된 목적에 환원시키게 된다. 후자의 관점에서는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의 창출을 통해 인류의 삶을 보존하고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가치창출의 과정(process)에서도 전자의 관점에서는 정당한 절차(due process)를 생략하거나 투명하지 않고 애매한 기준에 기반하여 왜곡된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고 집행한다. 그러나 인간가치 창출의 관점에서는 원칙에 기반하여 정당한 절차에 따라 목적에 정렬된 방식으로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사람(people)에 대해서도 전자의 관점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왜곡된 목적에 수단화 시키지만, 후자의 관점에서는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는 가운데 연대성을 추구하고 협업하여 의미 있게 일하도록 돕는다.

이런 맥락에서 세월호 사건을 해석하자면, 인적 가치창출의 관점에 기반해 왜곡된 목적을 추구해 사람을 수단화하는 기업의 난폭함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현상적으로 드러난 세월호 사건은 이런 관점이 극단적으로 적용된 한 기업의 행위가 표출된 것이요, 이 사건과 관련된 이후의 총체적 부실은 기업만이 아니라 정부, 사회기관, 언론들의 목적, 과정, 사람들의 왜곡된 상호작용의 극치를 드러낸 결과이다. 그러면 이 사건은 끝났는가? 아직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의 구조작업이 끝나면 이 사건은 끝나는 것인가? 진짜 사건은 우리 사회에 인적 가치창출 관점이 너무나 팽배해서 뼛속까지 내재화돼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긴 역사 속에서 한국사회의 현 시점에서의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기업과 정부기관과 언론에만 한정되고 교회에는 적용되지 않는가?

한국사회의 구원의 방주가 돼야 하는 교회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것, 이것이 우리 시대 한국교회의 사건이다. 세월호 사건과의 차이점은 애통해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마음 아픈 것은 세상이 교회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건 아니건 신을 섬기는 집단을 함부로 대하고, 그들이 믿는 신에 대해 경멸할 수 있다는 것은 사건 중의 사건이다. 교회경영의 두 관점은 신본주의와 세속주의이다. 전자의 관점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성경적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방향을 설정하지만, 후자의 관점은 철저하게 이에 반하는 관점으로 하나님 대신에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인본주의, 물신주의, 성장주의 등으로 드러난다. 교회경영의 구조적인 측면인 목적(purpose), 과정(process), 사람(people)의 3P를 방향적인 측면인 두 관점으로 대비시켜보면 한국교회의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자명해진다.

교회의 목적(purpose)은 어떻게 왜곡됐는가?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이 돼 서로 사랑하고 성장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이웃을 섬겨야 하는 교회가 다양한 왜곡된 목적을 추구해왔다. 그 중 하나가 교회 성장인데, 교회 건축에 열중한 한국교회의 부채규모가 약 10조원이라고 한다. 이자율이 5%라고 하면 매 주일마다 교인들의 헌금으로 갚아야 하는 이자만 100억원이 된다. 세상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과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지 않고 이웃을 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 지도자가 예배를 함부로 여기고 사람을 동원해 예배를 방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또한 교회가 세상의 아픈 곳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월터스토프는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에서 "슬픈 사실은 교회가 오직 착취당하는 자의 편에만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는 거기에 계셨고, 지금도 거기에 계시지만, 그 분의 '몸'인 교회는 거기에 없다"고 하면서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분리된 교회의 기현상을 안타까워한다.

관점의 싸움에서 패배한 교회의 모습은 과정(process)에서도 드러나는데, 의사결정 과정이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보다는 사람들의 역학을 먼저 생각하고,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 왜곡은 사람(people)의 측면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준비되지 못한 목사가 권위만을 내세우는 것, 교회관이 희미한 목회자의 생명력 없는 설교, 깊이 있는 영적 성장을 포기한 교인들, 너무나 교인 수가 많아서 한 영혼을 귀히 여기지 못하는 태도, 세속화된 직분제도 등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감히 말하기 어려운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의 문제들이 존재한다.

세월호 사건도 있고 해서 교회는 다양한 여름 사역들이 사고 없이 안전하게 마쳐지기를 소망한다. 여름 사역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중요하고, 어떤 교회도 이런 사고가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 관점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데, 여름 사역에서 사고나지 않고 무사히 마치는 것이 진정으로 안전한 것인가? 물리적 사고의 예방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고의 뿌리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 한국사회에서 교회의 '사건'은 신본주의와 싸워 이긴 세속주의가 목사와 교인들의 뼛 속까지 내재화돼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 자체이다. 이 관점이 교회의 목적, 과정 및 사람의 모든 측면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한, 한국교회는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이 표출이 되든 아니든 이미 사건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말로만 변명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신본주의로 돌아가 교회의 존재 목적을 회복하고, 성경적 원리에 기반한 정당한 과정을 회복하고, 목사와 교인들이 깊이 있는 성장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회복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삶이 뒷받침될 때, '사건'은 해결되고 세상은 교회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총체적 위기에 가벼운 처방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극과 아픔은 성숙으로 가는 계기를 제공한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국교회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애통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회복의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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