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 NGO칼럼 ] NGO칼럼

최영일 목사
2014년 06월 30일(월) 17:25

얼마 전 남편과의 갈등으로 센터를 찾은 어느 결혼이민자는 울면서 시어머니에게 받았던 상처까지 꺼내 놓았다. "너 그렇게 하면 사장(국제결혼중개업자)에게 보내 버릴 거다. 돈을 얼마나 많이 들였는데." 듣고 있던 그녀는 가슴이 먹먹해 할 말을 잃었다. 이 시어머니의 비용에 관한 언급은 비슷한 시기에 외국인노동자 상담 때문에 만난 어느 사업주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내가 저 외국인 하나 데려오는데 얼마가 들었는지 알아요?" 자신이 했던 잘못들은 망각해 버린 지 오래고 이제 남은 것은 본전생각뿐이었다.

1996년 체불임금을 받으러 갔다가 사장의 차에 받혀 병원에서 한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난 후 찾아왔던 페루 여성, 2005년 안산 어느 제조업체의 생산라인에서 전자부품을 세척하는 노말 헥산으로 인해 사지가 마비된 태국 노동자들을 보상도 치료도 없이 몰래 출국시켜버리고 감추려 하다 세상을 놀라게 했던 어느 회사의 이야기, 2014년 오늘까지도 끝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설움 가득한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들의 이야기들은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어둠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어두운 이야기들이 언제쯤 어떻게 이 땅에서 이야깃거리로서의 자리를 상실하게 될까?

2005년경부터 한 달이면 1~2백 명이 넘는 외국인노동자들 혹은 결혼이민자들과 사소하거나 심각한 다양한 문제들을 상담 하던 중 나의 내면에 자리 잡기 시작했던 것은 부버의 '나 와 너'라고 하는 주제였다.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기는 한 건가?""괴롭고 슬프고 상처받고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는 그런 '너'라고 여기고 있는 건가?" "아니면 단지 노동하는 기계 내지는 이윤추구를 위한 '그것', 나를 위한 그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인가?"

일견 긍정적인 이야기들 보다는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이야기들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입장에서 자연스레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이라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오랜 기간, 그리고 양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이들과의 만남의 자료를 가지고 비추어 볼 때 단지 한 두 억울한 이들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그 뿌리가 깊고 고질적이며 반복적이며 전반적인 문제라 여겨진다.

여기에 더하여 국가주의에 충실하게 입안되고 수행되고 있는 외국인력정책은 마치 공식적으로 외국인노동자는 국내 어려운 기업들을 위해 다소 인권침해를 받아도 된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효성이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불법체류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퇴사 후 14일 이내에 마땅히 지불해야할 퇴직금을 몇 년 뒤 출국 후에 지불하도록 법을 바꾼다거나 대부분 최장 3년의 계약기간 내에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여 상당한 수준의 인권침해 혹은 근로기준법의 침해의 증거를 확보한 경우에나 사업장을 옮길 수 있기에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확보하기 이전의 다양한 상처나 손해는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때로는 체질개선을 해야만 이 사회에서 건강한 기업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열악한 기업들까지 포함하여 외국인노동자들을 중소기업의 소모품처럼 도구화시키면서 동시에 결혼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한 핑크빛 다문화주의를 선전하는 모순되고 이중적인 다문화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기괴한 형국이다.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그래서 선교를 통해 하나님 백성 삼아야할 존엄한 인간을 국가가 나서서 도구화하고 그것을 대가로 얻게 될 국내 기업의 이윤을 계산하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외국인들에게 상처주고 홀대함으로 초래하게될 국가의 미래가치의 손실을 고려한다면 당장의 이득을 위해 어리석음을 범하는 소탐대실의 예라 할 수 있다. 너무 순진한 접근이라 탓하는 이도 있을 법하나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 이들이라면 여전히 우리가 수용할만한 선을 넘어선 사항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외국인노동자나 다문화가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너무나 쉽게 '나 와 너'가 아닌 '나와 그것'의 관계를 설정해가며 함부로 '너'를 도구화하고 착취하고 상처주고 동시에 이윤을 추구하는 맘몬을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나와 그것'에 익숙한 사단적인 세상과 싸워 '나와 너'로 충만한 하나님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확장시켜 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던가?

최영일 목사 / 김포이주민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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