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의 문제가 아니다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신정 목사
2014년 06월 30일(월) 17:23

평양신학교 2회 졸업생으로 연해주에 파송되셨던 최관흘 목사의 선교 사적지 지정을 위한 자료 조사 차 총회 역사위원회 일로 블라디보스톡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답사를 준비하면서 최관흘 목사에 대해 연구도 하고 논문도 쓰신 현지 선교사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일면식도 없던 분이었는데 업무 차 도움을 받기 위해 전화 통화를 몇 번 하고,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일정을 준비하게 되었다. 선교사님께서 친절하게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시고 위원들을 맞이할 준비를 정성껏 해주시는 것이 고마워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을 준비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여러 해를 지낸 사람들은 고국에서 먹던 먹거리를 그리워하는 것이 떠올랐다. 이전에도 다른 선교지를 방문할 때 고사리, 취나물 말린 것 등 해외에서는 구하기 힘든 나물 말린 것들을 가져 갔더니 선교사님들이 좋아하셨던 기억이 났다. 출국 전 아내에게 부탁하여 각종 나물 말린 것을 담은 봉지들을 준비하였다. 속옷과 두어 벌 가벼운 옷가지만 가져가면 작은 여행 가방이면 될텐데 이민 가는 사람처럼 큰 가방을 준비하여 나물 말린 것을 가득 채워 담았다.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가져간 나물들을 꺼내 선교사님께 드리니 나물 봉지들을 받아 들고 살며시 웃으시며 "고사리, 취나물 심지어 명이나물까지 이 곳에는 나물들이 지천에 널려 있어요. 러시아 사람들은 이런 걸 잘 먹지않아 밖에 나가면 얼마든지 캘 수 있거든요. 힘들게 이런 걸 왜 가지고 오셨어요"라고 말하시면서도 고맙게도 감사의 마음은 기쁘게 받아주셨다. 내 생각과 내 과거의 경험들이 항상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미리 좀 알아볼 걸 하는 민망한 마음에 나도 웃고 말았다.

이솝 우화의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가 생각났다. 여우는 두루미를 초대해 납작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 주었고 두루미가 긴 부리 때문에 먹지 못하자 왜 먹지 않느냐고 무안을 준다. 마음이 상한 두루미는 화를 억누르고 돌아와서 여우를 초대해 목이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똑같이 갚아 준다.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도 생각이 났다. 소와 사자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어 그 사랑의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 음식을 준비해 준다. 소는 날마다 신선한 풀을 사자를 위해 준비했고, 사자는 소를 위해 맛있는 살코기를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소는 살코기가, 사자는 풀이 너무 싫었지만 참고 또 참으며 자신은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상처는 깊어만 갔다.

문제의 발단은 접시냐, 호리병이냐 하는 그릇의 문제도 아니요, 살코기냐, 풀이냐 하는 먹을 것의 문제도 아니었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함이 문제다. 이해와 배려의 문제요, 소통 단절이 문제였다. 그런데도 세상은 여전히 그릇의 문제로 다툰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일방통행은 상대방 뿐 아니라 결국 자신도 불행하게 만들고 만다. 배려가 중요한 이유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편협한 눈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면 결국 자신도 배려 받지 못한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자신도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 받기 만을 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이해와 배려가 없는 일방통행은 사회나 공동체에 어려움을 가져온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행동이나 발언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가져오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신정 목사 / 광양대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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