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이뤄진다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강성효 목사
2014년 06월 30일(월) 17:14

담임 목사 청빙을 받고 임지로 떠나려 할 때 많은 지인들로부터 들은 말이다. "목사님, 그런 산촌에 왜 가십니까?" "노인들만 있는 농촌교회, 장례만 치르다가 끝날 텐데요!" 위로한다고 하는 말이지만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말들뿐이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내 결정이 잘못 되었나 염려도 되었지만 담임으로 청빙되어 간다는 이 엄연한 현실이 더 기뻤다. 모든 염려와 주위의 걱정들을 뒤로하고 성령님 인도하심을 믿으며 소망의 돛을 올리고 서울을 떠났다.

정말 멀고 먼 길이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들어서니 굽이굽이 고개고개를 넘어야 했다. 산은 점점 높아지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가파른 산길, 검푸른 나무들과 이름 모를 멧새들만이 우리를 반겼다. 사실 교회의 이름도 교회가 위치한 지명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땅에 우리 내외는 왔다. 광야에 던져진 느낌이 길을 더할수록 더 깊게 느껴졌다. 낯선 길에 긴장한 나머지 아무 말이 없는 우리 내외를 보고 동행했던 장로님께서 정적을 깨뜨리고 말씀하셨다.

"이제 십리만 가면 교회입니다. 다 왔습니다. 공기 좋고 물도 좋고 인심도 좋은 곳입니다. 목사님, 그렇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낙동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니 물이 좋고도 많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푸른 숲이니 공기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강가에 자리 잡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아담한 교회, 경치는 세상 어느 교회보다 좋은 곳이다. 수 년 전만 해도 교회가 위치한 이곳에 놀잇배를 띄웠다 하니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겠는가! 교회가 보이는 마지막 고개를 넘으며 장로님께서는 가슴 깊이 품고 있던 말씀을 하셨다. "목사님, 우리 교회는 자립이 안 됩니다. 생활비는 조금밖에 드리지 못합니다." 많은 생각 끝에 어렵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어렵게 말씀을 하시는 장로님이 나는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

모두가 소망이 없다는 궁벽한 농촌교회, 그 중에서도 자립도 안 되는 약한 교회를 왜 첫 임지로 선택하고 결정했을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 질문이다. 그 해답은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이다. 어릴 때 "아들 셋 중 하나라도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어머님의 말씀을 따라 나는 열여덟 철없는 나이에 목회자가 되기로 서원 기도를 하였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나의 발길은 점점 세상으로만 향했다. 불혹이 지나자 기도는 바뀌었다. "하나님, 제가 드리는 십일조로 열 교회가 운영되도록 하겠습니다."
계산적으로 보면 나 한 사람이 목회자가 되는 것보다 열 교회를 섬길 수 있으니 하나님께 더 유익이 아닌가? 그러나 그 기도가 드려진 후 해를 넘기지 못하고 상상할 수 없는 시련이 몰아닥쳤다. 해외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의식을 잃고 죽음에 이르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어디선가 희미하게 비명소리가 들렸다. 차츰 의식이 회복되고 감각이 돌아왔다. 들리는 비명소리의 출처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의식을 잃기 직전 내가 탄 자동차가 커다란 트럭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생명의 줄을 놓았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해가 바뀌고 치료가 끝나자 신학교 입학을 결심하며 다시 기도했다. "어디든지 가오리다." 그 기도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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