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차집'과 '성전'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최태협 목사
2014년 06월 23일(월) 18:12

30년 전 농어촌 면소재지에서 개척교회 담임전도사로 부임하여 성도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성도들이 살고 있는 집의 위치를 말할 때 그 기준을 '똥차집'으로 말하였다. 예를 들어 "아무개 성도님 집이 '똥차집'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된다"는 식이었다. 동네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가게나 주택의 위치를 알릴 때 '똥차집'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주변에 눈에 띄는 큰 건물이 없어서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똥차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직접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 당시에는 면소재지에서 개인주택으로는 가장 잘 지은 2층 양옥집이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잘 지은 집을 왜 동네 사람들이 '똥차집'으로 부르는가를.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잘 지은 집을 왜 '똥차집'이라고 부르는지. 주변 사람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 집 주인이 분뇨차 사장이라는 것이다.

30년 전 만하더라도 면소재지에 수세식 화장실이 많지 않았다. 대다수 화장실이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분뇨를 처리할 때 인분을 통에다가 담아서 지게, 리어카 또는 달구지에 실어서 논밭에 거름으로 뿌리는 시대였다. 가장 큰 이유는 분뇨를 처리하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료가 흔치 않은 시대여서 친환경(?) 영농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면소재지에 분뇨차가 혜성같이 나타나서 집집마다 쌓여있는 인분을 신속하고 청결하게 처리하면서 인기가 대단하였다. 시골에서 돈을 쓸어 모은 것은 당연하였다. 졸지에 지게나 달구지에 분뇨를 처리하던 영세업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고 다른 직종으로 전업을 해야 했다. 분뇨차 사장은 벌어들인 돈으로 2층으로 양옥집을 지었는데 면소재지에서는 가장 잘 지은 주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근사하게 잘 지은 집이라도 동네 사람들이 그 집을 부를 때는 모두 다 '똥차집'으로 통했다. 옛 추억을 되살려 곰곰이 생각해볼 때 동네 사람들이 분뇨 처리로 졸부가 된 그 집 주인에 대해서 배가 아파한다거나 비하해서 그 집을 '똥차집'으로 불렀다고 생각이 되지는 않는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당시 수준으로 놓고 볼 때 시골에서 워낙 잘 지었고 한 눈에 띄는 집이었기에 그냥 자연스럽게 동네 사람들 사이에 그렇게 불렸던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내 안에 온갖 더러운 정욕과 이기심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똥차집'과 다를 바가 없다. 제아무리 많이 배웠고, 외모가 출중하며, 많은 재물을 소유했으며, 사회적 명성과 권력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똥차집'과 같은 인생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 안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며, 성령께서 내주하신다면 '성전'이 되는 것이다.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도 없으며, 외모가 초라하고, 세상에서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하더라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다면 나는 '성전'이 되는 것이다.

최태협 / 목사 ㆍ 신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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