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선구자 '이수정'

[ 기고 ] 일본 동경(東京) 선교지 방문기

정재훈 목사
2014년 06월 17일(화) 14:01

제98회 총회에서 동경 시바(芝)교회와 동경(東京)교회가 해외선교 기념사적지로 지정됐다. 지난 5월 14일 이 일을 위해 두 교회를 방문했다. 시바교회는 한국 기독교 선구자 이수정 선생이 세례 받은 교회이다.
 
이수정은 1882년 9월 박영효 수신사 일행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게 된다. 그는 수신사 유람단으로 일본에 먼저 갔다 온 안종수로부터 소개 받은 쯔다(津田仙)박사를 만나 신앙을 갖게 된다.
 
수신사 일행이 3개월 간 체재 기간을 마치고 귀국했으나 이수정은 그대로 일본에 잔류하였고 쯔다 박사는 그를 일본교계의 지도자인 야스가와(安川亭)목사에게 소개하여 신앙지도를 받게 했고 드디어 1883년 4월 29일 그의 집례로 세례를 받았다.
 
141년의 역사를 가진 이 교회를 방문했다. 역사위원회가 시바교회를 해외 사적지로 지정하게 된 것은 이수정이 한국인 최초로 세례 받은 것만을 평가한 것이 아니다. 그 교회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오기까지 지대한 공헌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수정은 한국에 복음을 발아시키는 기틀을 착안했다. 그는 서구문화를 받아들여 개화된 일본을 보고 조선도 그와 같이 개혁되는 한 방안으로 미국 선교사를 요청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편지로 인하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가 1885년 4월 5일 대한민국에 온 것이다. 이들이 미국을 떠나 한국에 올 때 2개월 간 일본에 머무는 동안 자기네를 부른 장본인 이수정에게 한글을 배웠고 그가 번역한 마가복음을 들고 입국했다.
 
점차적으로 일본에 공부하러 오는 유학생들이 증가함에 따라 1906년 9월에 창립된 동경YMCA가 주일이 되면 예배처소로 사용됐다. YMCA 관계자들과 학생들의 청원으로 우리 총회는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인 한석진 목사를 파송하여 조만식을 비롯한 3인을 영수로 백남훈 외 4인을 집사로 임명하여 명실공이 교회를 조직했다. 이 교회가 오늘의 동경교회이다.
 
근세 한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정점(頂點)은 1419년 일본 동경 YMCA의 2·8독립선언이다. 2·8독립선언은 본국의 3·1독립선언 보다 20일 먼저 있었고 서명자들에게 용기와 큰 자극을 주었다. 이와 같이 민족사와 한국교회사에 끼친 동경YMCA의 혁혁한 공적에 관하여 미처 평가하지 못한 것은 역사위원장인 필자의 불찰이었다.
 
동경교회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동경YMCA도 총회 사적지로 지정함이 마땅하다는 현지 선교사들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귀국 즉시 총회 사무총장과 상의했더니 흔쾌히 찬동했다. 지난 5월 27일 총회 임원회는 동경YMCA를 해외선교 기념사적지 추가 청원을 허락해 주었다.
 
각필하면서 일언 하고자 하는 바는 이수정의 불행한 말로이다. 그는 본국 소환령을 받고 귀국 즉시 수구파의 음모로 체포되어 처형되고 말았다. 분명 순교였는데도 역사는 침묵 중이다.'한국기독교 선구자 이수정'의 저자인 김수진 목사는 "이수정의 흔적은 현재 한국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제 찾을 수 있는 길은 딱 한 가지이다. 그가 불러서 왔던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 무덤, 기념비 옆에 '한국기독교 선구자 이수정 기념비'를 세워 놓는 것"이라 말한다. 졸자(拙者)도 동의하는 바이다. 정재훈 목사

정재훈 목사/총회 역사위원장ㆍ서부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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