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같이 흐르는 은혜 <상>

[ 은혜의뜨락 ]

김영섭
2014년 06월 10일(화) 11:45

김영섭 장로
경주구정교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 이 고백은 사도바울의 고백만이 아니라 나 자신의 고백이며 신앙을 가진 우리의 모두의 고백일 것이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또 나의 가정이 지금과 같은 복된 모습을 가지기까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면서 동시에 그 은혜는 나의 믿음의 선조로 부터 시작되어 나에게로 흘러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듯이, 나에게도 믿음의 조상이 계시는데, 그 분은 나의 할머니이다. 할머니의 순전한 신앙은 나의 아버지에게로 계승되었고, 그 신앙이 다시 나와 나의 자녀들과 이제는 손자들에게 까지 5대에 걸쳐 이어져 내려가고 있다.

1879년생인 나의 할머니 한순이는 일제 치하의 너무나 가난한 시절 6남매를 낳아 기르시며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였듯이 너무나 힘든 삶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매일 같이 술에 빠져 있었기에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할머니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희망이 보이지 않던 할머니의 삶을 바꾸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한 마디 외침을 듣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할머니 집 앞을 지나가던 어떤 아낙네가 복음을 전하는 소리였다. "형제여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이 말 한마디는 할머니의 마음을 울렸다. 아울러 "예수를 믿으면 술과 담배도 끊고, 노름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서 현재의 비참한 상황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예수 믿고 예배당에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내 자식들은 결코 허랑방탕한 인생을 살게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경주시 외동읍 장산리에 세워진 장산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50세였다. 그 후 진실한 신앙을 인정받아 미국 선교사를 통하여 세례를 받게 되었다.

예수를 믿게 되어 소망을 찾게 되었으나 신앙으로 말미암은 핍박도 감수해야 했다. 자식들과 함께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안 시집의 어른들이 "서양 종교를 섬긴다"며 가문으로 부터 축출해 버렸으며, 다른 집안 친척들도 일절 왕래조차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당시 서로 돕고 살아도 힘든 상황에서 너무나 외롭고 고된 삶이 계속 되었다. 할머니는 그러한 핍박에 굴하지 않고 주님만이 삶의 진정한 소망이 됨을 믿으며 필사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을 지켰다. 글을 배운 적이 없었으나 교회에서 한글을 배워 성경을 읽었으며, 모든 찬송가를 한 곡조로 부르면서 오직 신앙의 힘으로 험난한 삶을 극복하며 나아갔다. 나의 아버지 김병식 장로에 의하면 어린 시절 잠을 자다가 무슨 소리가 들려 눈을 떠 보면 할머니는 밤새도록 물레를 돌리며 찬송을 부르셨는데, 가장 즐겨 부르시던 찬송이 '내 영혼이 은총 입어'와 '아 하나님의 은혜로'였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부터 자신의 어머니의 찬송과 기도 소리를 들으며 자라났고, 오직 신앙만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길임을 어릴 적부터 깨달았던 것 같다.

요즈음 '오직 예수, 오직 신앙'이라는 구호가 가슴에 크게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나, 할머니가 신앙 생활하셨던 그 때만 하더라도 아무런 희망도, 아무런 기쁨도 없는 그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오직 예수'의 신앙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때 할머니가 밤마다 부르신 찬송, 밤마다 드렸던 그 기도는 삶의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필사적이며 온 영혼을 바쳐 부르는 찬송이며 기도였을 것이다. 그 찬송, 기도, 그 신앙의 힘이 자신의 후손인 나와 나의 자녀들에게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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