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 ③ 히틀러 제거 운동 앞장

[ 목회·신학 ] 현대신학산책

박만 교수
2014년 06월 02일(월) 17:02

독일로 돌아온 본회퍼는 그의 매부이자 독일의 대법관이었던 도나니를 통해  군대 내 히틀러 제거 운동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운동에 참여할 때까지 본회퍼는 많은 신학적 숙고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그는 그의 조국인 독일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히틀러가 총통으로 있는 한 독일이 하루라도 빨리 패망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 조국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에 나타난 사랑의 힘을 믿는 목사요 신학자였다. 그런데 이런 그가 왜 폭력으로 히틀러를 살해하는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해서 본회퍼는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만일 미친 사람이 대로로 자동차를 몰고 간다면 목사로서의 나는 그 차에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그 가족을 위로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자동차에 뛰어올라 그 미친 사람의 손에서 핸들을 빼앗아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즉 그는 억울한 사람들이 무수히 희생되는 것을 방조하는 죄보다는 히틀러를 제거하는 죄악을 범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것 역시 살인이며 십계명을 위반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는 언제나 최선 아닌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해 가장 적절한 윤리적 결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1942년 가을 본회퍼가 관여하고 있던 나치 전복 음모가 발각되면서 그는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1943년 4월 5일부터 1944년 10월 8일까지 18개월 동안 테겔의 군대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아직 혐의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기간 중 부모, 친구 그리고 그의 약혼녀인 마리아 폰 베테마이어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그와 서신 교환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그의 학생이자 친구이며 친척인 베트게였는데, 본회퍼가 죽은 후 이 편지들은 베트게에 의해 '옥중 서간'이란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 편지들을 통해서 본회퍼는 성경 묵상, 이 시대의 교회가 가야 할 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의미 등을 단편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1944년 9월 22일 본회퍼가 포함된 히틀러 전복 음모에 가담한 사람들의 명단이 발견되고, 본회퍼가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나타나면서 그는 베를린의 게슈타포 감옥으로 옮겨졌고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되었다. 1945년 1월 7일, 다시 부켄발트 수용소로 옮겨졌고, 이때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 독일이 패망할 때까지 본회퍼의 생사는 알려지지 않았다.

죽음을 눈앞에 둔 마지막 몇 달 동안의 본회퍼의 삶은 전쟁이 끝난 후 그와 함께 있었던 죄수들의 증언을 통해서 알려졌다. 그가 수용되어 있던 부켄발트 수용소에는 히틀러에 저항하던 정치범들과 여러 나라의 전쟁 포로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본회퍼는 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목사로 섬겼다. 이 당시 본회퍼를 본 페인 베스트라는 사람은 이렇게 쓰고 있다. "본회퍼는 매우 겸손하고 부드러웠다. 그는 항상 지극히 작은 일 하나에도 기쁘고 행복해 했다.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도 그에게 깊은 감사의 분위기를 가지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와 같이 진실한 사람은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하지만 본회퍼 역시 인간이었다. 그는 감옥 창살 너머 날아오르는 새들의 자유를 부러워했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보고 싶어 했으며, 언젠가는 풀려나 약혼녀인 마리아와 결혼해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꿈에 잠기곤 하였다. 하지만 그가 처한 환경은 수시로 그를 우울과 절망에 빠뜨리곤 하였다. 감옥에 있던 본회퍼는 모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깊은 절망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인생의 뿌리를 하나님 안에 깊이 박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엄습하는 모든 어둠의 시간을 극복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길고 긴 내적인 분투와 기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박만 교수/부산장신대ㆍ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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