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6월 2~7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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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30일(금) 10:25

월-구원의 기쁨
본문 : 빌 4:4~7
찬송 : 191장

사람들에게는 각기 다른 기쁨의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은 한시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더 큰 기쁨이 생기게 되면 잊어버린다. 그리고 슬픈 일이 생기면 묻히고 만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기쁨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기쁨이다. 구원의 기쁨은 영원한 기쁨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큰 감동과 기쁨을 가져다준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기쁨이 바로 구원의 기쁨이다.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며 편지를 시작한다. 다른 기쁨이 아니라 구원을 주신 예수님께 기뻐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믿는 자들에게 기쁨은 예수님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기분이 좋을 때는 기뻐하고, 심기가 불편하면 기뻐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항상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기쁨을 가진 사람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와, 해야 할 것 한 가지를 바울은 말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구원의 기쁨을 소유한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바로 염려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쓸데없는 근심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짐을 지고 스스로의 마음을 공연히 괴롭히는 것이다. 염려가 생기는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염려가 존재 하는 한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염려 대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도하고 간구해야 한다. 기도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기도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 기도하되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로 나아가는 자들을 축복하신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 또 하나,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할 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되 그 응답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최선임을 믿고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감사함으로 받겠다는 태도로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와 간구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보잘 것 없는 저에게 구원의 기쁨, 거룩한 기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욱 목사
/영동교회


화-너희도 온전하라
본문 : 마 5:48
찬송 : 426장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온전해야 한다. 그것도 하나님 아버지처럼 온전해야 한다. 이럴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온전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 '온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교만이고 거만한 행위'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그 항변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로 교만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명하신다. 그러므로 지금은 "너희도 온전하라"는 명령을 잘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그렇다면 왜 온전할 수밖에 없는가?

먼저는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처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심히 좋아하셨다. 우리를 하나님처럼 창조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처럼 온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그 지으심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으니 죄송할 뿐이다. 그래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가 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처럼 될 수 없다고 그 말씀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히 좋아하시도록 온전하게 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장차 주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처럼 바꾸실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사도는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는 주와 같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너희도 깨끗하라"고 명령한다. 곧 장차 예수님처럼 깨끗하게 될 것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처럼 온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깨끗하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끗하지 못함을 늘 씻음으로 온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주님처럼 깨끗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를 성령님의 소유 삼으셨기 때문이다. 베드로사도는 오늘 우리에 대하여,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곧 지금 우리는 성령님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서 아름다운 덕을 선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덕을 늘 선전하여 온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성령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처럼 창조된 자이며, 장차 주님처럼 바뀔 자이며, 오늘 성령님의 소유물 된 자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만희 목사
/순천의교회


수-보배로운 산 돌
본문 : 벧전 2:1~10
찬송 : 331장

베드로사도는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배로운 산 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속해서 보배로운 산 돌로 각인되어지도록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깨닫게 한다.
 
첫째로,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이야기 한다.
 
1절과 2절의 말씀을 살펴보면 내용이 대비된다. 1절을 읽어보면 악독, 기만, 외식, 시기, 비방하는 말이 열거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갓난 아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반면, 악독하며 기만한 어른들은 신문을 펼쳐 볼 때마다 넘쳐나는 세상이다. 죄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갓난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 심령의 가난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의 말씀을 사모해야 된다.
 
둘째로, 5절 말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령한 집을 세우라고 명령하신다. 신령한 집은 교회이다. 갓난 아이가 어머니의 품 안에서 무럭 무럭 자라나듯이 성도들은 교회를 통하여 성숙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신령한 집을 지을 수 있는 생명의 돌이 되어야 한다. 즉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성도들이다. 주님의 마음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에서 부풀어 오를 때,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제자가 되며, 주의 제자들이 모퉁이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신령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셋째로, 5절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라고 했다.
 
정리를 하면, 신령한 젖을 먹고, 신령한 집을 세우며, 그리고 신령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신령한 제사는 바로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배자들이 되라는 것이다. 거룩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예배라는 것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들을 다시 회복하며, 하나님의 자녀됨을 확신하며, 하나님 백성으로 회복되어지는 시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의지로 거룩한 예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 가운데 들어갈 때 거룩해지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죄로 인하여 오염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린 아이처럼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신령한 집을 지으며, 신령한 예배자들로 세워져서 무너져가는 하나님 나라의 성벽을 재건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은균 목사
/샛별교회


목-화목으로 평화를 이룬 요셉 가정
본문 : 창 50:15~21
찬송 : 490장

 
오늘은 용서를 통해 모든 것을 얻는 요셉 가정을 만나보자.
 
요셉은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동생 베냐민을 낳은 후 죽었다. 어머니의 죽음이 요셉에게는 큰 충격이었건만 동생과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안식할 수 있었다. 많은 자식들이 있었는데 유독 아버지 야곱의 일방통행적인 사랑은 자식들로 하여금 경쟁심을 불러 일으켰고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요셉을 형들은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게 되었다.
 
기회가 왔다. 양을 치던 형들을 찾아 나선 17세 요셉은 그만 형들에게 잡혀 구덩이에 빠지고 나중에는 애굽의 노예로 팔리게 된다.
 
큰 사랑을 받고 고난이라고는 경험하지 않았던 요셉은 지옥같은 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엔 형들을 심하게 미워하며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의 마음에는 어느새 그 마음은 사라지고 아버지께 받았던 큰 사랑만이 남는다.
 
'그래 내게는 아브라함 증조할아버지 이삭 할아버지 야곱 아버지가 믿던 하나님이 있지 않는가?'
 
어느덧 힘든 일과가 가벼워지고 매일매일 눈을 뜨고 감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그에게 찾아오는 기회가 많아졌다. 보디발 장군 집에서 가정총무까지 하고 그러다가 누명으로 옥살이가 시작되는데 그곳에서 애굽나라 최고의 비서실장 두 명을 만나게 되어 애굽의 모든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그리고 꿈풀이도 재미있다. 하나님이 척척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게 되고 그 꿈해석으로 인해 요셉은 바로 왕 다음 가는 국무총리가 된다. 이제 요셉이 집을 떠난지 25년 정도 흘렀다. 아버지가 가족이 형제들이 큰 어머니 작은 어머니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쯤 요셉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양식을 달라는 형님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요셉 자신이 그렇게 용서해달라고, 잘못했다고 빌었거만 비웃으며 노예상인들에게 팔아 넘긴 사람들이다.

요셉은 떨렸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형들에게 최소한 용서를 빌 수 있는 사건을 준비한다. 그 옛날 형제를 노예로 팔아버린 악한 마음에 이 사건이 변화를 줄 것인지 주시한다. 그리고 요셉은 드디어 형들 속에 동생을 팔아버린 그 죄책감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아파하는 형들에게 "내가 그 요셉입니다"라며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그리고 함께 울고 안아준다. 요셉의 용서는 아버지 야곱이 죽고난 다음에 더 분명해진다. 용서만큼 빠르고 확실한 화목과 평안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십자가만큼 더 큰 감동이 있을까? 오늘 요셉의 용서 속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한 번 더 바라보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용서하는 요셉이 아름답습니다. 이 시간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엄영현 목사
/주명교회


금-손오공
본문 : 마 18:1~10
찬송 : 453장

고전문학은 세월이 흘러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 수많은 고전 중 중국의 4대 소설을 꼽자면 삼국연의, 수호지, 홍루몽, 서유기이다. 그 중 서유기는 손오공의 신기한 도술과 요괴들과의 숨 가쁜 싸움 등 신나는 모험을 묘사하고 있다. 서유기야말로 판타지 소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서유기 초반을 살펴보면 도술을 배운 손오공이 갈수록 교만함이 극에 달해 천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등 안하무인이 극에 달한다. 이런 손오공을 제압하기 위해 석가모니는 직접 대결을 벌이고 결과는 손오공의 패배로 끝난다. 석가모니는 자신을 최고라고 자부했던 손오공의 교만을 단번에 박살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는다. "천국에서는 누가 큰 사람입니까?" 제자들은 서로 누가 더 크고, 잘났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것 같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비결을 알고자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러한 속물적 기대와 교만을 박살내셨다. 도술이 아닌 진리와 말씀으로 손오공 같은 제자들을 박살내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저 어린 아이 하나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다 또한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지 말고 너희도 실족하지 마라 그리고 이 작은 자 중 한명이라도 업신여기지 마라."
 
세상에는 손오공 같은 사람이 많다. 죄 많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가소롭게도 자화자찬하면서 '내가 너보다는 낫다'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어'라는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에 대한 감사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모함도 없이 나의 '의'로만 점철되어진 교만한 신앙생활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의 능력이 삶 속에서 나타날 수 있겠는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기에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 앞에서 자신을 쪼개지 않으면 도저히 낮아질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가 말씀 앞에 나아올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낮아짐과 동시에 땅의 백성이 아닌 천국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겸손함을 얻게 된다. 날마다 말씀 앞에 나아가자. 나를 향해 부드럽게 타이르는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의 손오공을 깨뜨리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짐으로 천국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원필 목사
/울산삼산교회


토-거룩한 여정, 고난
본문 : 골 1:24
찬송 : 393장

필자는 밀가루 음식을 별로 안 좋아 한다. 어쩌다 짜장면이라도 먹게 되면 뱃속이 편치 않아 밤새도록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뱃속의 느낌이 달라지듯, 우리의 내면(영혼)에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의 느낌과 소리가 다르게 된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고백한다. 바울의 내면에 채워진 고난으로 인해 그 삶의 색깔은 어떠했는지 들여다보자.
 
고난과 아픔은 하나님의 신비를 찾아가는 거룩한 여정이며 축복의 통로이다. 고난은 알 수 없는 미로 같지만 주님의 마음으로 채워가는 필수적 코스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무엇인가? 인류의 구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부족한 것이 있다는 말인가?
 
있는 그대로 읽으면 그리스도 자신이 당한 고난이 충분하지 않으며 아직 채워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어디에서도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에 부족함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참고 희생하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자기 백성이 환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 자신도 고통을 느끼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들이 이방인들이 당하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내 몸에 채운다는 것은 성도들뿐만 아니라 이방인(타인)들의 아픔까지도 함께 아파해 주는 것이다. 세월호로 인해 어린 생명들이 희생을 당했다. 우리 모두는 책임을 통감하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바울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도리어 기뻐한다.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 받게 된다. 사역자와 거룩한 성도로 부름 받은 자들은 고난 받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될 것이다. 고난의 길목에서마다, 신앙의 길목에서마다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길 기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교회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이방인들까지도 위로하며 울어주며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아버지의 긍휼의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점화 목사
/열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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