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종교인과의 거리

[ 성서마당 ]

김병모 교수
2014년 05월 27일(화) 09:48

우리는 다종교 사회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다종교 가정에서 살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와 타종교인들 간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멀수록 좋은 걸까, 가까울수록 좋은 걸까, 아니면 적당해야 좋은 걸까? 우리는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타종교인들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고전 5:10). 그들과 함께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사회봉사도 한다. 그렇다. 우리는 그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 그래야 할까? 그들의 종교와는, 그들의 종교의식과는, 그들의 종교모임과는, 그들의 신앙고백적인 활동과는 어느 정도로 관계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오늘 이야기에서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10장에서 '우상제물'(타종교의 신에게 바쳐진 고기)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스도인은 이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 영적 깨달음을 얻은 자들은 먹어도 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시고 다른 신들은 우상에 불과하기 때문이고(고전 8:4), 이 땅의 모든 것은 다 선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10:26). 반면에 그런 깨달음에 미처 도달하지 못한 자들은 먹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종의 우상숭배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8:7).

이 둘 중에서 누구의 주장이 옳을까? 바울은 원칙적으로는 전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곧 이 깨달음과 그것에 기초한 행동이 더 중요한 원칙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원칙이라고 천명한다(10:22~23). 지식보다는 사랑이 더 중요한 원칙이다(8:1).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지식은 자기의 유익만을 추구하지만,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구체적인 예들을 제시한다. 첫째, 시장에서 고기를 사서 자기 집에서 먹을 수 있다(10:25). 둘째, 이방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는 그가 내놓는 고기를 먹을 수 있다(10:27). 셋째,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그 고기는 우상의 제물이라고 밝혀주면 먹지 않아야 한다(10:28). 넷째, 타종교의 신전에 가서 그 종교의식에 참여하고 그 제물 고기를 먹는 것은 안 된다(10:20~21).

영적 깨달음과 그것에 기초한 행동을 앞세우면, 자칫 약한 형제 자매들을 멸망시키는 부작용이 뒤따라오게 된다(8:11). 반면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더 앞세우면,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게 된다(10:33).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타종교인들 및 그들의 종교와 과연 어느 정도로 관계해야 할까? 

김병모 교수
호남신학대학교ㆍ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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