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천주교, 신앙과 직제협 총회 통해 일치 첫걸음

[ 교계 ] "함께 사귀고, 공부하며, 행동하고, 기도하는 공동체" 다짐, 교인들에게까지 일치 확산하는 건 큰 과제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4년 05월 27일(화) 07:51

   
▲ 일치선언문을 남독한 뒤 총회 참석자들이 기립해 박수로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장창일 차장
 한국의 개신교와 천주교가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 창립 총회를 갖고 일치를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딪었다. 지난 22일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창립총회에는 교회협 회원교단 대표들을 비롯해서 한국 천주교와 정교회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근간이 되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위원회에도 로마 가톨릭이 공식적으로 참여해 친교하고 대화하고 있는 만큼 이번 한국 그리스도교가 신앙과 직제협의회를 조직한 일은 세계교회의 흐름과도 일맥상통하는 진일보한 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는 "오늘 이 자리의 만남은 다른 신앙전통을 가지고 각기 다른 역사를 써왔던 한국교회 각 교파가 앞으로 한 역사를 쓰겠다는 선언"이라며 "100년 후 오늘을 평가할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며, 큰 기대를 표했다. 신앙과 직제협의회 창립의 의미와 향후 과제 등을 짚어 본다.

 △신앙과 직제협의회 창립, 그리스도교는 어떤 만남을 갖게 되나
 개신교와 천주교 간의 만남과 대화의 노력은 이미 세계교회 차원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로마 가톨릭은 교황청 교회일치 촉진위원회가, 개신교는 WCC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이 일에 앞장서 왔고 1968년부터 시작한 '그리스도인 일치 공동기도주간'을 통해 매년 한차례 그리스도교가 함께 모여 기도회를 갖는다. 이 기도주간에는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가지 주제를 정해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일치를 경험한다. 세계교회 차원의 이 같은 만남은 1982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위원회 회의에서 '세례 성만찬 사역에 관한 문서'(BEM 문서)를 채택하는 결실을 거뒀으며, 이 문서를 바탕으로 리마 예식서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리스도교가 함께 모이는 노력은 국내에서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와 정교회 한국대교구를 비롯해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가 참여한 가운데 진행돼 왔으며, 1986년부터 매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 공동기도회'를 갖고 있다. 일치를 향한 노력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2002년에 '그리스도교 일치회의'를 구성해 일치포럼과 신학생 교류 등 만남과 대화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기도 하다. 그리스도교 일치회의는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포럼'을 통해 2000년 1월에 '교회일치운동의 역사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첫 포럼을 연 이래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신학 대화의 회고와 전망',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교 내의 대화', '그리스도인의 삶과 성례성사, 성찬례', '지구화 시대의 일치운동' 등의 주제로 개신교와 천주교 간에 대화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이번 신앙과 직제협의회가 창립 총회를 가진 것은 이같은 역사적 배경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로 향후 개신교와 천주교가 서로를 보다 잘, 깊이 이해하고 친교하는 중심축이 될 전망이다. 한국신앙직제는 창립선언문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짧은 교회 역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형제적 일치와 친교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면서, "선교 현장에서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발생한 배타적 무관심과 상호비방을 중지하고 분열의 책임을 서로 느끼며 영적 대화를 통한 일치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히면서 대화를 통한 일치운동의 시금석을 삼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협의회는 '가깝게 사귀고, 함께 공부하며, 함께 행동하고, 함께 기도하는 등 사업의 방향을 이 4가지로 잡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협의회는 공동 사무국을 설치하고 이 대화의 흐름을 평신도들에게까지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 교회협과 한국 천주교 대표들이 총회 창립문서에 함께 서명한 후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장창일 차장

    △위(지도부)로부터의 결의, 아래(교인들)로 이어질까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한 우산 아래에서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매우 구체적인 행보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이 결정은 국내 개신교와 천주교의 지도부 간의 합의이다보니 향후 대화와 만남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지역교회들이나 교인들의 호응과 관심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지, 보다 본질적인 과제가 남게 됐다. 세계교회 차원에서도 개신교와 천주교가 함께 만든 일치의 역작인 BEM문서, 이를 기반으로 태어난 리마 예식서에 따라 1983년 캐나다 뱅쿠버에서 열린 6차 WCC 총회에서 성찬식이 거행된 이후 지금까지도 원활히 사용되지 못하는 뼈아픈 역사가 있다. '일치의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이 교회와 교인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지는 못했던 셈이다.

 하지만 신앙과 직제협의회에 참여한 개신교와 천주교 대표들은 "이제 시작한 만큼 이어질 여정을 지켜봐 달라"고 요청했다. 창립 총회에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총무 신정훈 신부는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와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가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에서 만나 대화했던 일을 소개하면서 "동서교회의 화해가 시작됐던 당시 만남에 대해 정교회 신자들의 반대가 엄청났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은 많은 진보가 있었다"면서, "오늘 우리가 하는 일은 비록 작더라도 성령께서는 교회 지도자들을 움직이신 것처럼 교인들도 인도하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해 향후 신앙과 직제협의회를 통해 신앙과 직제가 조화를 이루는 결실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장 김희중 대주교도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마치 다른 종교를 가진듯한 배타적인 말과 행동을 서슴치 않았는데 이것은 신앙의 오류라기보다는 우리 인간의 자존심과 집단 이기주의로 인한 부산물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한번 신앙의 본질을 찾아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사귀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행동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상명령으로 주신 일치 안에서 사랑하고, 진리 안에서 사랑하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뿐 아니라 교인들까지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길 소망한다"고 덧붙이면서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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