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음주 측정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곽군용 목사 pckcongo@hanmail.net
2014년 05월 21일(수) 13:17

 
한 달전 쯤, 서울에서 몇몇 친한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목포에 내려왔다. 중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그야말로 흉허물 다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가까웠던 친구들이었다. 일식집에서 그들을 대접했다. 식사도중에 내가 물었다.
 
"너희들, 목사님이 따라주는 술을 마셔본 적 있어?"
 
50대 후반의 나이까지 만년 서리집사인 한 녀석이 눈치 보면서 말했다. "곽 목사님, 그래도 되는 거야? 우리야 목사님이 따라주면 더없는 영광이지." 그 녀석은 집사가 아니라 '잡사'였다.
 
술을 시켰고, 친구들에게 그 첫잔을 따랐다. 술잔이 몇 차례 돌아가자 우리는 옛날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 마냥 행복해 했다. 밤이 깊었고, 친구들을 내 차에 태우고 호텔로 향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호텔로 가는 길목에서 음주 측정 경찰을 만난 것이다. 한 대씩 한 대씩 진행하면서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운전석 창문을 여는 순간 술 냄새가 진동했는지, 젊은 경찰이 좋아했다. 한 건 건 수를 올린 것이다. 차 속은 다 취해 있었다.
 
"훅~ 하고 불어보시죠!"
 
나는 훅~ 하고 불었다. 측정기를 들여다보는 경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시 한번 세게 불어보세요!" 나는 더 세게 훅~ 하고 불었다. 경찰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분명 차 속 사람들은 전부 취해 있었고 술 냄새가 진동하는데, 운전하던 나에게서는 아무 것도 검출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했다. "여보게 젊은이, 양동제일교회 알지? 나, 그 교회 목사야. 나는 술을 안마셨어."
 
"아, 목사님이셨군요. 그래서 측정기에 아무것도 없었군요. 안녕히 가십시오."
 
깍듯한 경례를 받으며 나는 친구 녀석들을 호텔로 데려다 줄 수 있었다. 친구 녀석들이 맥주와 소주를 합한 '쏘맥'을 마시는 동안, 나는 사이다와 콜라를 섞은 '싸콜'을 마셨기 때문이다. 운전하는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그날 다시 한 번 느꼈다. 차에 탄 모든 사람들이 다 취해 있어도, 운전하는 한 사람만 맑은 정신으로 있으면 사고날 염려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반대로 차 속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맑은 정신이어도, 운전하는 한 사람이 술취해 있으면, 차 속의 모든 사람이 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단순화시켜 바라본 세월호 침몰 참사의 핵심이었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못되고, 부패고리가 깊이 공직 사회에 만연되었어도, 선장 한 사람이 올바로 서 있었다면, 자기가 누구이며 자기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다면, 그리고 그 선장이 "갑판에 나오지 말고 선실에 있는 것이 안전하니 선실을 떠나지 말라!"는 잘못된 메시지가 아니라, "배가 침몰하려고 하니, 전부 갑판으로 나오라!"고 올바른 메시지만 전했다면, 그 많은 우리 청소년들이 죽지 않았을텐데. 계속해서 잘못된 메시지만 승객들에게 전했던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만들었는지….
 
5천년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유교든, 불교든 종교가 타락하면서 함께 왕조가 멸망할 때 나타났던 가장 큰 공통적인 현상, 그것은, 그 종교의 본래 메시지가 기복신앙으로 변질되어졌다는 것이라고 한다.
 
21세기 세속의 물결이 교회로 밀고 들어와 많은 교인들이 음란에 취하고, 명예에 취하고, 돈의 맛에 취하고, 쾌락에 취하고, 영적인 잠에 취하고, 죄악에 취해 있어도, 한국교회라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기사이고 선장인 목회자들이 기복신앙의 물을 탄 변질된 복음이 아니라, 개혁주의 신학에 깊이 뿌리박은 복음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하기만 한다면, 교회는 희망이 있고 이 시대와 미래의 우리 민족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는 빛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곽군용
목사 ㆍ 양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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