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희망을 이야기하자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서정오 목사
2014년 05월 19일(월) 17:33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아픔

자식을 잃은 아픔으로 고통을 당하던 세종에게 황 희 정승은 말했다 한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는 그래도 목멱산(남산)이 보이더니, 자식 죽으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더이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산에 묻지만, 자식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다. 자식을 앞서 보낸 부모들의 아픔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이들의 아픔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위로한답시고 보태는 말이 오히려 그들의 아픔에 무게를 더할까봐 조심스럽다. 아마도 저들의 고통과 아픔은 자신들이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아픔의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야 한다. 그런 고통을 안겨준 이유들을 다시 한 번 깊이 살펴보면서, 이런 참극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이 땅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난날처럼 그저 눈물만 흘리다가 세월 지나가면 또 다시 이런 참극이 빚어지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을 간직하면서도, 재발되지 않도록 모든 면에서 정비하면서 저들을 잊지 말고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재난을 통해 성숙해 가는 공동체

 인류 역사를 통해 재난이 없던 시절도, 공동체도 없었다.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성숙했고, 성장해 왔다. 어쩌면 성숙한 사람일수록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이요, 강한 국가일수록 그만큼 시련을 많이 딛고 일어선 나라일 것이다. 오늘의 선진국들 중 그 어느 나라도 이런 재난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백 년 동안 그런 재난과 참극을 겪으면서 오늘의 국가 모습들을 갖추어 온 것이다. 지난 50 여년 짧은 기간에 압축 성장을 해 온 우리는 그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절망하지 말자. 오히려 저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말고, 이번 기회를 영적, 육적, 국가적인 발돋움의 기회로 삼자. 이 엄청난 비극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우리 민족의 가능성을 곳곳에서 발견하지 않는가? 시스템이 철저하게 무너지고, 책임자들은 다 도망갈지라도 그 속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끝가지 감당하다가 떠난 이들의 아름다운 죽음이 있다. 죽는 순간에도 남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던 많은 이들의 아름다운 마음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복원력이란 균형감

 세월호가 침몰한 직접적 이유는 복원력 상실이었다. 복원력이란 무엇인가? 좌와 우의 균형을 잡아주는 힘이다. 오늘 이 시대, 세월호 참극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도 바로 이 균형을 잡을 줄 아는 감각이다. 그동안 우리는 지나치게 양극화되어 싸웠다. 감성과 지성,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성과 속, 배짱과 뇌짱, 산문과 시, 남과 북, 동과 서 그리고 영과 육, 등등이 균형을 잡기보다는 마치 원수처럼 대립해 왔다. 이제는 조금씩 양보하면서 균형을 잡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 협상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지금은 함께 살지 못하면 함께 망하는 시대이다. 2,000년 전 하나되게 하소서’(17)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기도가 오늘 이 시대 대한민국에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주님, 우리로 하나 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서정오 목사 / 동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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