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는 세상, 마음 나누는 교회

[ 4인4색칼럼 ]

김기태 교수
2014년 05월 19일(월) 16:52

"말이 통해야 살지!"라는 푸념을 가끔 듣는다. 들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스스로 내뱉기도 한다. 서로 무엇인가 소통이 어려울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뿐아니라 교회에서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이런 말은 단지 말에서 그치지 않고 점차 소리가 높아지고 험한 말로 변하면서 급기야 심하게 다투는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이 통하지 않은 데서 출발한 갈등이 아예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심지어는 상대를 적으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한다. 여기서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 기술이 필요하듯, 바람직한 소통도 기술과 훈련이 필요하다.

말이 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잘못된 표현으로 정확한 전달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말하지 않고 자신의 뜻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경우까지도 있다. "그걸 꼭 말해야 아나?"라든가 "이심전심으로 그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아?"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물론 예외적으로 그런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커뮤니케이션 행위는 정확한 표현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교회 내 커뮤니케이션에서 이런 사례를 흔히 목격한다. 공식적인 회의에서도 정확하게 말하지 않은 내용을 과거 관습이나 경험에 비추어 전달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면서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꼼꼼히 회의록을 작성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나누는 소통이 중요하다. 단순한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읽고 공감을 표시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해는 하지만 공감은 못 한다'는 말은 아직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다른 표현이다.

전하고자 하는 의미나 생각을 상대에게 단순히 전달하는 수준을 완전한 소통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수 없다. 서로 마음을 나누는 공감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전한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마음을 나누는 수준의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가능한 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내가 상대의 입장이라면?'이란 마음으로 다가가려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필요하다.

교회는 마음이 통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말에 그치는게 아니라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따뜻한 마음의 교류가 넘치는 공간이어야 한다. 당회로부터 교회 안의 모든 회합이나 회의에서 진정한 마음의 나눔이 전제되는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간혹 세상의 모임이나 회의보다도 더 한 막말과 폭언 그리고 고성이 오가는 교회 모임으로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모습을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할 때가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가능한한 목소리를 낮추고, 상대의 눈을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선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의 반응을 섬세하게 살피면서 그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배려하는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 상대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 자체보다는 그의 마음을 읽으려는 세미한 관찰이 필요하다. 결국 좋은 소통은 꾸준한 노력과 훈련을 통해 가능한 것이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특히 오늘날 교회에서 더욱 그러하다. 

김기태 교수 / 호남대ㆍ한국미디어교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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