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지방자치 (3)역사와 회고

[ 특집 ]

정경호 목사
2014년 05월 19일(월) 16:49

"변화, 주변부로부터 일어났다"

흔히 '지방자치'를 영어로는 '로컬 거번먼트(local government)'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한국사회가 이 말을 영어의 원래의 뜻인 '지방정부'로 번역하지 않고 '지방자치'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실정법에서와 같이 '지방자치'를 '지방자치단체'라고 할 경우, '정부'는 '중앙정부'만을 의미하게 된다. 중앙정부의 관점에서 볼 때 지방자치는 하나의 자치단체에 불과한 것이며, 지방자치단체는 어디까지나 중앙정부가 인정한 법인체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북 분단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지방으로 이전되는 권력은 행정권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기타 선진국의 지방자치와는 많은 차이를 갖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지방차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76.5%에 이르는 사람들이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수준이 미흡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한 가장 큰 이유는 중앙정부가 부처의 권한을 이양하지 않고, 재정 분권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하고 인구와 재정 규모를 고려해 차등적 지방분권을 시행해 나가야하며, 지역 간의 과다한 경쟁보다는 상생적 관계를 유지하고 나아가 약자가 배려 받는 동시에 생명, 정의, 평화가 넘치는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지방차치의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흑인 여성 운동가 벨 훅스(Bell Hooks)는 '주변부에서 중심부로(From Margin to Center)'란 책에서 '사회 변화는 먼저 중심부가 강해지고, 중심부가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안정돼야만 주변부가 안정되며 평화롭다'는 생각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는 오히려 '주변부의 사회가 안정되고 삶의 질이 개선돼야만 중심부가 변화되고 바뀐다'고 역설하면서, 특히 미국 사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돼 있는 흑인 여성들의 삶이 안정되고 삶이 개선돼야만 미국 사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학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책이 있는데, 미국 뉴저지에 있는 드루신학대학원의 교수를 역임했던 이정용 교수의 '주변부(Marginality)'란 저서다. 이정용 교수는 이 책에서 변두리, 곧 지역의 중요성을 성서적,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시 가장 발달된 중심부의 도시였던 하란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 돌과 자갈밭이 있는 변두리 땅, 가나안으로 가게 하신다.(창 12:1~5) 하나님은 하란에서의 아브라함이 아닌 가나안 지방의 아브라함에게 일을 맡기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높은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나 인간들을 섬기기 위해서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빌 2:1~11)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곳이 당시 이스라엘의 중심부였던 수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미미하고 보잘것 없는 베들레헴이라고 기록하며, 그것도 가축들이 있는 누추한 구유간이라고 말한다. 구유간이야 말로 변두리 중의 변두리요, 가장 주변부의 장소인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신 곳도 화려한 도시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억눌려 있는 갈릴리였다. 갈릴리야말로 주변부 중의 주변부였던 곳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주변부 곧 지방자치에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우리는 '생명 정의 평화'가 넘쳐나는 지역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거룩한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에 지방자치 시대를 향한 목회, 교육, 선교 철학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만 한다. 우리 신앙인들은 지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나아가 가장 지역을 아름답게 가꾸어 갈 최상의 적임자에게 일을 맡길 책임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야말로 모든 관심을 수도권의 화려하고 큰 교회에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의 작은 교회와 홀로 설 수 없는 농어촌의 교회에 기울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와 지방자치의 관계를 기독교 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지방자치 제도를 실시하고 지방 정책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지방자치란 지역의 살림살이와 문제를 지역주민들 스스로 참여해 해결하도록 하기 위해서 실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은 직간접적으로 주민 자치에 참여함은 물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거나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지방자치로 하여금 건강하고 아름다운 지역을 만들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지방자치란 주민들이 단체장을 뽑고 일을 맡기며 감독함으로써, 대화, 타협, 상생이란 민주주의의 기초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적인 방법 곧 토론, 대화, 사랑, 정의, 생명, 평화를 훈련받은 기독교인들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동반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셋째, 지방자치란 지역의 일에 대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지역을 더욱 아름다운 사회로 만들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각 지역 교회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당에 얽매이지 않고 헌신적으로 봉사할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선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역 사회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넷째, 지방자치는 지역 속에 가난하고 소외되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약자가 배려 받는 아름다운 세상, 곧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 여기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분단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반도는 물론 전쟁, 난민, 극빈, 자연재해, 질병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을 복된 곳으로 만들어가는 일까지 연결돼야 한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비전과 정책을 수립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생명, 정의, 평화가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곧 다가올 6월 4일은 7대 지방자치 단체장을 선출하는 날이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지역을 변혁시켜 나갈 수 있는 가장 적임자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16세기 제네바로 망명해 온 칼뱅이 프랑스에서 온 20여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난민들을 위해 제네바 시 당국과 대화하고 토론해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것처럼 말이다. 우리 교회가 지방자치단체들을 향해 모두가 만족하고 모두가 넉넉하고 모두가 만족하며 그리고 모든 약자가 배려 받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참신한 정책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모든 지역이 행복한 세상을 맛볼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정경호 목사
영남신대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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