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5월 19~24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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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15일(목) 11:41

월-주님의 평화를 이루소서
본문 : 고후 5:18~19
찬송 : 408장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탕자를 사랑하신 아버지는 탕자가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허랑방탕한 탕자인줄 알면서도 용납하고 사랑했다. 결국은 어느 때인가는 반드시 탕자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아버지는 탕자를 기다렸다.
 
첫째로 우리에게 평화의 길을 열어주셨다.
 
인간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기 위해서 철학으로 도덕으로 종교로 자기 노력으로 애를 쓰지만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갈 수도 없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돌아가심을 통해서 이제는 예수님만 믿으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으로 믿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죄가 있지만 죄가 없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과 원수였는데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말이다.
 
둘째로 우리들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다.
 
세상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돈도 명예도 지위도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서 화목이 빠져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궁궐에서 호화 호식하며 매일 연락하고 살아도 거기에 불화가 있고 시기 질투 다툼이 있다면 지옥일 것이다. 그러나 방 한 칸에서 죽을 먹고 살아도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산다면 그곳이 천국일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와 화목을 위해 독생자까지 희생하셨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간 곳 마다 화해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장벽이 무너졌다. 주인과 종의 장벽이 무너졌다. 어린이와 어른의 장벽이 무너졌다. 남자와 여자의 장벽이 무너졌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와 나의 장벽이 무너졌다. 나를 사랑하므로 열등의식 소외감이 없고 고독이 없고 외로움이 없어지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자연을 사랑하게 된다.
 
여러분이 계신 곳에 화평이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가정이 비록 가난해도 화목한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이 화목을 위해서 큰 대가를 지불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을 모시고 화목한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웃과 화목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 속에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있기를 원합니다. 먼저 우리의 가정이 회복되어 가족간에 평화를 누리게 하옵소서. 나만의 이기를 위한 평화가 아닌 주변의 이웃, 더 나아가 모든 인류가 누리는 진정한 평화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원필 목사
/울산삼산교회


화-내 아들아, 내 딸아 미안하다
본문 : 눅 23:26~31
찬송 : 83장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야 할 5월 가정의 달에 세월호 침몰로 인해 울음소리 가득한 애통하는 계절이 되고 말았다.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듯이 우리 국민들, 어른들의 죄가, 위정자들의 죄가, 기업주들의 불법이, 종교지도자들의 죄가 우리의 아들, 딸들을 죽였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모두가 사고의 문제점들은 제기하지만 사태의 부정과 불법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두고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두고 울어라. 보아라, '아이를 배지 못하는 여자와,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한 태와, 젖을 먹여 보지 못한 가슴이 복되다'하고 사람들이 말할 날이 올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자기 십자가를 메고 올라갈 때, 슬피 울며 예수님을 뒤따르던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왜 자신보다 예루살렘의 딸들과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실까? 로마서 12장 15절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울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무엇 때문에 울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본문은 자녀들을 위해 울어주라고 한다.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부모는 자녀를 위해 눈물의 기도를 올린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병들었을 때, 좋은 옷을 못 입혔을 때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것은 단지 혼(魂)적인 측은지심의 눈물이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그날이 이르면 잉태하지 못한 이가 더 복이 있고 해산하지 못한 배와 젖이 더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 중 그날은 자녀들의 구원의 때, 심판의 때이며 이 때를 위해 울라고 하신다. 자녀의 성공이나 합격이나 결혼을 위한 측은지심의 눈물이 아닌 그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개를 담아 '아들아, 용서해 줄 수 있겠니?'란 제목의 기도시를 바친다.
 
오늘의 기도
 
잎이 피기도 전에 꽃봉오리는 떨어졌다/ 눈부실 정도로 화사한 4월 어느날 어두운 안개는 깔리고/ 기쁜 몸짓으로 꿈을 싣고 수학여행 가는 날/내 자녀들의 꿈은 침몰되었다/ 어느 누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했던가/ 탁하고 더러운 윗물이 너희를 죽였구나/어미의 죄 때문에/ 아비의 교만 때문에/어른의 불의 때문에/ 부자의 욕심 때문에/습자지에 물 배어오듯 그리도 빨리 잠들어 버린/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아/ 미안하다 / 모든 것을 용서해다오

조 점 화 목사
/열매교회


수-사랑의 은사
본문 : 고전 12:31~13:13
찬송 : 304장

은사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달란트이다. 지금 내가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 보다 잘 한다면 은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사에도 큰 것이 있는가? 고린도전서 12장 31절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한다. 여기서 큰 은사란 사랑이다. 사랑이 가장 큰 은사다. 바울은 이 큰 은사를 사모하라 말한다. 사랑이 빠진 병 고치는 은사는, 사랑이 빠진 예언의 은사는, 사랑이 빠진 방언 말함의 은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바울은 사랑의 은사가 가장 큰 은사라고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희생적 사랑, 헌신적 사랑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인내의 사랑도 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서 바울은 사랑의 덕목 열다섯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 무려 다섯 가지가 인내와 관련이 있다. 오래 참는 것, 온유한 것, 성내지 아니하는 것, 모든 것을 참는 것, 모든 것을 견디는 것, 이 모두가 인내와 관련이 깊은 것이다. 그렇다. 아가페 사랑의 제일 큰 특성은 인내다.
 
하나님은 인내가 풍성한 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우상 숭배의 무서운 죄를 범하였을 때, 그들을 용서하면서 이렇게 선포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예수님의 재림을 늦추고 기다리시는가? 왜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고 계시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가운데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 얻기를 바라시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인내는 어떤가? 하나님의 인내를 받은 자답게 사람에 대하여 참아주는가?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베드로가 주님께 이렇게 물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그러자 주님은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이라도 할 지니라"고 하셨다. 진정한 사랑은 오래 참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하셨다. 게다가 독생자까지 보내주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은사 중에 최고는 사랑의 은사다. 사랑의 은사만 받으면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가정이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 사랑을 본받아 사랑의 은사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욱 목사
/영동교회


목-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본문 : 잠 3:1~4
찬송 : 206장

우리는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은혜는 사람 앞에서도 좋은 일이지만, 특히 하나님께는 더욱 좋은 일이다. 이럴 때 우리는 높은 자존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성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사람에게는 받지만 하나님께는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성도들 중에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과 하나님께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방법을 잘 배워야 한다. 본문에서는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귀중히 여김 받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는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본문 1절은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중히 여김을 받으려면,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억되면 좋은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다. 우리도 하신 말씀을 잊지 말자.
 
다음은 하신 말씀을 지켜야 한다. 본문 1절은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명령하시고, 2절에서는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중히 여김을 받으려면 하신 말씀을 지켜야 한다.
 
다시 말하여 자기 육신의 생명은 지키지 못할지라도 하신 말씀은 지켜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과 사회와 교회의 목표는 지키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지키는 일은 너무 쉽게 포기한다. 그러나 하신 말씀을 지켜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다.
 
그리고 하신 말씀을 새겨야 한다. 본문 3절은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고 명령하시고, 4절에서는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중히 여김을 받으려면 하신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에 세상 지식은 새기지 못할지라도 하신 말씀은 새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 지식과 지혜는 잘 새기려고 노력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 새기는 일은 너무 가볍게 여긴다. 그러나 하신 말씀을 새겨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잊지 말고 지키며 새기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 받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만희 목사
/순천의교회


금-믿음의 진을 편성하라
본문 : 민 2:32~34
찬송 : 358장

하나님께서 광야로 들어선 이스라엘에게 진을 편성하라고 명령하신다. 진 편성을 통해 공동체 영성을 깨닫게 하시며 훈련하신 것이다. 공동체 영성이 왜 필요한가? 그것은 신앙의 여정이 짧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서 갈 수 없는 광야는 믿음의 진(교회)을 통해 가능하다.
 
믿음의 진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를 묵상해 보자.
 
첫째로, 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 진영의 군기와 자기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고 한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진을 편성하면서 하나님은 먼저 가문을 상징하는 기호를 만들고, 그것을 기초로 군기를 만들라고 명하셨다. 깃발은 정체성을 의미한다. 지금 자신이 어느 위치에 서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믿음의 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끊임없이 살피는 것이다. 군기 안에 가문을 상징하는 기호가 있듯, 나의 비전과 기도제목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깃발 안에 담아 보아야 한다. 자신의 욕심과 의지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만이 우리의 깃발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진을 배치할 때, 기준이 되는 지파가 유다 지파였다. 유다 지파가 동방 해 돋는 쪽에 자리를 잡으면, 르우벤 지파가 남쪽에, 에브라임 지파가 서쪽에, 단 지파가 북쪽에 자리를 잡는다. 중심에 레위 지파가 언약궤를 메고 자리를 잡으면 진 편성이 끝나는 것이다. 행진할 때를 보면 먼저 동쪽에 있던 유다 지파가 움직이고 르우벤이 따르고 레위 지파가 가운데 있고, 에브라임 지파, 마지막으로 단 지파가 따른다. 유다의 믿음은 마중물과 같은 믿음이다. 공동체가 진을 배치하거나 진행할 때 시작이 되는 지파이다. 믿음의 진영에는 뒷짐 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마중물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셋째로, 34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르며 자기들의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더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진 치기나 행진할 때 사각형의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언약궤가 있는 레위 지파는 중심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진을 편성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말씀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진은 행진할수록 하나님 나라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이 믿음의 진의 위력이다. 여러분 자신과 섬기는 교회의 뒤안길은 어떠한가? 움직일수록 하나님 나라가 선명해졌는가?
 
오늘의 기도
 
우리 자신이 믿음의 진으로 편성되어 신앙의 여정을 걷게 하시며 그 여정 속에 하나님 나라가 증거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은균 목사
/샛별교회


토-시험을 이긴 아브라함 가정
본문 : 창 22:1~19
찬송 : 342장

아브라함은 본래 유프라테스 강이 있던 갈대아우르라는 곳에서 태어나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다.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는 말씀을 듣고 그는 아버지와 아내 조카와 종들을 데리고 하나님이 주신다는 가나안 땅으로 이사 온 것이다.
 
아는 사람도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렇게 25년을 살다가 사라는 90세 아브라함은 100세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삭이 태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 다음으로 아브라함을 온 인류의 조상으로 세우려고 갈대아우르 고향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2천킬로 정도 떨어진 곳으로 부르셨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요 믿음으로만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이 태어난지 25년쯤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아브라함아 너의 독자 아들 이삭을 내게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하나님 같다. 하나밖에 안주시고 또 주신 그 아들을 다시 빼앗아가려는 것 같다. 원통하고 분을 냈다고 성경은 기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날 아침이 되자 아브라함이 불과 칼과 나무를 종들에게 지우고 길을 떠났다고 기록한다. 게다가 3일 정도 가야 하는 먼 거리이다. 하나님은 왜 늙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큰 시험문제를 내신 걸까? 아브라함 가정을 통하여 믿음이 온 인류를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삭이 묻는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다"고 대답한다. 참으로 믿음이 넘친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작정했을 것이다. '이삭을 드리면 하나님이 또 어떻게 하실 것이야!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번제단에 도착하여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네가 번제물이다"라고 말했을 때 이삭은 순간 얼마나 놀랐을까. 충분히 늙은 아버지를 밀치고 도망갈 수 있었다. 그런데 믿음은 전수되나 보다. 이삭이 아버지의 결박에 순순히 응하였고 아브라함이 담담히 칼로 이삭을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은 '멈추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미 3일 전에 수풀에 숫양이 걸리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넉넉히 이렇게 준비하신다는 것을 체험하고 그곳을 여호와 이레라 부르며 시험에 통과하게 된다.

믿음을 잘 전수하는 것이 자녀에게 최고의 축복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의 믿음을 봅니다. 모리아산 번제단처럼 높은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엄영현 목사
/주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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