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딸도 다시 보자"

[ 목양칼럼 ] 목양칼럼

곽군용 목사
2014년 04월 28일(월) 16:42

"목사님, 요즘에 우리 교민사회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게 뭔데요?" 호기심에 차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자는 딸도 다시 보자" 예요.

함께 식사하던 남선교회 회원들 중 안수집사님 한 분이 웃자고 한 농담에 일순간 모두들의 얼굴에 심각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식당에 하나 가득 스며들던 아침 햇살이 떨리는듯 했다.

몇 년 전, 뉴욕에 있는 어느 교회의 선교부흥회를 인도하는 동안 나는 날마다 새벽집회를 마친 후 그 교회 각 남선교회 회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가졌다. 그 식탁에서 내게 들려준 미국에 사는 교민들 사이에 유행하던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였다. 내용인즉 이러했다.

60년대, 70년대에 자녀교육만은 올바로 시켜보자고 청운의 꿈을 품고 한국에서의 편안한 직장 다 포기하고 미국으로 이민 와서 몸이 부서져라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궂은일을 마다하고 온갖 일을 다 해왔던 한국 교민들이었다. 몸은 고되고 힘들었어도 특유의 한국인 끈기로 버티면서 자녀들만은 좋은 나라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가는 모습에서 위안을 삼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어느 정도 남부럽지 않게 살림 기반도 잡고 돈도 좀 벌었다. 그런데 가정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그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빨리 영어를 배우라고 집에서 조차도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오직 영어 실력 키워주려고 극성을 떨었는데, 이제 그들이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니, 그들은 한국말을 거의 못하고, 부모들은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만한 영어는 할 줄 모르고 그러니 집에서는 "밥먹어라, 학교 갔다 왔니? 돈없다!" 같은 간단한 말 외에는 자녀들과의 대화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가니, 이제는 그들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개인주의화 되어서 생각하는 자체가, 전통적인 예절과 유교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부모들의 사고방식과는 너무도 틀렸다. 그리고 미국의 자유분방한 교육을 받아서인지, 분명히 저녁에 자기 방에 잠자러 들어갔는데, 자녀들이 밤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자기 친구들과 클럽에서 밤새 만나 놀다가 아침에 들어오는 자녀들을 두고 부모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자는 딸도 다시보자"란다. 자녀들과 대화를 좀 하려해도 너무도 두터운 의식구조의 차이와 언어, 개인주의의 장벽 앞에 당황하는 부모들, 이제 그들이 몸이 부숴져라 추구하던 아름다운 가정의 꿈이 깨어져 가는 것에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문제는 아니어서 다행일까? 맞벌이 하느라 파김치 되어 집으로 돌아온 부모들, 몸과 마음이 피로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즐기며 살아가는지, 아이들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조차 없이 먼산 바라보듯 온 식구들이 TV만을 향해 눈을 고정시키고 식사를 하는 식구들, 따뜻한 격려와 활기찬 대화, 웃음 넘치는 부모와의 시간이 필요한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내몰리고 있을까? 컴퓨터 게임으로, 야동으로, 스마트폰 게임으로 아니면 학교 폭력조직으로? 그들의 허기진 마음과 영혼을 누가 채워주어야 할까.

우리들의 가정에서 대화를 회복해야 할 때이다. 너무 늦기 전에, 부부끼리, 그리고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최고의 지상낙원이기에.

곽군용 / 목사 ㆍ 양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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