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토'의 담을 헐고 나오라

[ 교계 ] [에큐메니칼지도력]

권오성
2014년 04월 15일(화) 16:12

한국교회는 '이런' 에큐메니칼 지도력을 원한다<3>

   
▲ 권오성 목사
한국교회에서 에큐메니칼 지도력은 사회 발전과 짝을 이루고 있다. 우리 사회는 1960년대 이후 20여 년간 정치적으로는 독재와, 경제적으로는 빈곤이라는 큰 장벽에 부딪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는 두 갈래의 길을 선택했다. 한 갈래는 종교적인 평안을 제공하는 것으로 한국교회 성장의 동력이 되었으며, 다른 한 갈래는 정치적인 민주화를 주장하고 빈곤으로 고통받는 이웃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서는 것으로 한국교회에 에큐메니칼 성격을 각인하고 사회적인 신뢰를 받았다.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칼 그룹을 통하여 1980년대 이후 통일문제도 과제로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유일한 교회연합 기관이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이 모든 과정을 이끄는 중심 지도력이 되었다. 이와 함께 분야별 에큐메니칼 교회 기관들이 생겨났다. 또한 교회의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해온 에큐메니칼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교회 연합기관들과 여러 교단의 실무 지도력을 맡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사회에 책임을 지고, 역사에 참여하여 개방적인 변화를 가져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헌신하는 그룹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였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의 불분명성, 내부 이해관계의 등장과 충돌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독점하려는 의식'이 팽배했다. 결국 전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 콘라드 라이저가 지적한 것처럼 "에큐메니칼 시대의 과거 황금시대를 머리 속에 환영으로 가지고, 그 잔해를 붙들고 행정하고, 권력을 분배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을 교회와 분리시키고 도덕적인 우월성을 제시하며 교회를 비난하는 자리에 서고, 실제로는 복음에 근거한 사명보다는 교단과 개인의 이해관계가 우선되는 풍토가 조성되고 만다.

한국교회의 새로운 에큐메니칼 지도력은 무엇보다 자신이 한국교회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가져야 한다. 에큐메니칼 지도력은 한국교회에 혹시 부족한 면이 있고, 사회적으로 부끄러운 면이 있어도 내가 그 일원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그 한국교회가 에큐메니칼 운동의 모태와 미래라는 생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만약 에큐메니칼 지도력이 한국교회와 분리된 '게토(Ghetto)'로서 존재한다면 그가 섬기는 기관은 한국교회와 무관한 몇몇 사람의 '직장'으로 전락하게 되고, 우리 사회에서 그 영적인 힘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세계화가 일어나면서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가치와 체제에 점점 함몰되어가고 있다. 에큐메니칼 지도력은 이에 대하여 '아니오' 하고, 복음이 주는 세계관을 비전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구체적으로 교회가 이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안과 함께 실천을 해나가는데 앞장 서야 한다.

한국교회가 WCC 10차 총회를 치르면서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칼 신앙고백과 직접 호흡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차원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로운 에큐메니칼 지도력은 이를 바탕으로 삼아 한국교회가 우리 시대에 지향해야 하는 신학적, 사회적인 과제를 발굴하고, 한국교회가 수용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앙, 신학, 교회를 바탕으로 할 때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향하는 연합과 일치, 사회적인 책임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에큐메니칼 지도력이 개인적인 이해관계의 범주를 벗어나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고, 우리 사회의 신뢰를 전폭적으로 받게 되고, 하나님 나라 역사에 크게 기여하기를 기원한다.

권오성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전 총무, 글로벌디아코니아센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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