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왔으니 하늘로 돌아가리라

[ 4인4색칼럼 ]

이창연 장로
2014년 04월 08일(화) 09:26

최근에 필자가 시무하는 소망교회에서 가까웠던 장로님 두 분을 하늘나라로 환송했다. 비록 하늘나라로 가셨다 해도 이 땅에서의 이별은 슬펐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시인 천상병이 생각났다. 천상병 시인은 막걸리를 잘 마셨다한다. 경기도 의정부에 살던 말년에 그는 해질 무렵이면 단골술집에 들려 혼자서 막걸리를 한두 잔 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당시 단골 술집의 주모는 할머니였다. 그런데 어느 날 천 시인은 단골집을 바꿨다. 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뻔히 알고 있던 부인이 슬쩍 물었다. "새로 가는 술집은 주인이 젊은 여자인가 보죠?" 시인은 화들짝 놀랐다가 늘 아내에게 했듯이 "문디 가시나…"라고 입을 삐죽거리며 대꾸했다. "새로 가는 술집은 잔이 더 크다 아이가." 고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남 몰래 술잔의 크기를 재보면서 속으로 득의양양했을 시인의 천진무구한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그의 술 욕심은 대단했다한다. 그런데 천상병 시인이 단골 술집을 바꾼 사연은 한 시인의 일화에 그치지 않는다. 천상병의 술잔은 문학의 존재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홀로 마시는 술잔의 크기에서 자족의 환희에 도달했다. 혼자 끙끙 앓다가 원했던 문장을 쓰게 된 작가의 희열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에 감동한 독자의 눈물도 다를 바 없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 라고 말하리라…'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하나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뿐이다. 하나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것 없다.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아귀다툼하고 싸울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는 구름에 손짓 등속과 한패일 수밖에 없다.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 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라며 스스로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시 '행복')라 일컬었던, 왼쪽 얼굴로는 늘 울고 있던 시인 천상병(1930~1993)의 '귀천'은 1970년 발표 당시에는 주일(主日)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이 시에서도 그는 인생이니, 삶이니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다. 이슬이랑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가볍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소풍처럼 살다갈 뿐. 그의 삶은 파란 만장했다.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으나, '동백림 사건(1967년)'으로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음주벽과 영양실조로 나타났으며 급기야 행려병자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친지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1968년)가 발간되었는데, 그 후로도 천진난만하게 25년을 살다 갔다.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을 내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이라고 노래했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시 '새') 그는 비록 막걸리를 좋아하는 범인(凡人)이었지만 그가 지은 시는 하늘나라와 하나님을 소망하고 사모한 노래들로 꽉 차 있다. 그러니 몸은 땅에 있어도 마음은 하늘나라에 두고 살았던 시인을 부러워 할 수밖에 없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ㆍ총회 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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