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 NGO칼럼 ] NGO칼럼

정진 목사
2014년 04월 07일(월) 17:49

우리에게 트라우마(Trauma)라는 단어가 익숙해 진 것은 불과 수 년 전의 일이다. 이전에는 주로 '상처'라는 이름으로 그 모든 내적 고통의 '아우라'를 통칭해왔다. 트라우마는 말 그대로 충격적인 상처다. 내적 안정감이 처절하게 무너지고 그 고통의 경험에 반응하는 수많은 줄기들이 악마의 손길처럼 뻗어나간다. 개인의 불안증, 우울증, 무감각증, 섭식장애 등의 정신병리 현상을 동반한 행동장애들로부터 사회적인 트라우마 현상까지 여러 유형으로 전이되곤 한다. 그래도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현대사회가 지닌 엄청난 고통의 맥락을 공감하는 이들이 전 세계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그들은 분쟁의 문제가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고통 받는 이들을 화해와 치유의 공간으로 초대하고 회복의 가치가 우리 사회의 통전적인 흐름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외친다. 특별히 국가재난이나 정치적 이념 논쟁, 전쟁 등으로 분쟁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훼손된 삶을 어떻게 회복의 자리로 전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사회적 안전망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구축에 관한 전 세계적인 흐름과는 별개로 사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물리적 공간 뿐 아니라 기본적인 정서적 공감 자체가 어려운 지경이다. 집단화된 함몰의 가치로 타인과 벽을 쌓고 갈등의 문제를 풀지 않으며 증오의 분출을 열정 따위로 여기는 질병이 전체 사회를 뒤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새로운 관계의 문을 열기보다 어제의 원수를 만나지나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마음의 빗장을 풀지 않고 서로를 적 이미지로 둔갑시켜 자신만이 정당한 피해자임을 자처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은 더 깊어져 완전히 관계의 판도를 새로 짜야 하는 상황까지 몰려간다.

큰 틀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는 '안전한 공간'의 부재라 할 수 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자신의 피해를 직면하여 진실하게 말하거나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없고, 잘못한 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행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대부분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해자를 처벌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드러내지 못하는 개인적인 영역에 불과하다. 문제해결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가해자는 처벌 이후 극도의 분노로 사회를 증오한다. 이해받지 못하는 당사자들은 어두운 구석에서 혼자만의 정의 구도를 만들어 놓고 이전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고자 마음 속에 새로운 가해대상을 정해 놓는다. 소위 '묻지마범죄'의 시작인 셈이다.

어려운 지경에 놓은 자들에게 기도해 보자고, 상담을 받아보라는 영혼 없는 말들을 계속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적인 안전지대에서 자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소통의 계기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 안전한 공간은 자기 직면이 일어나더라도 해를 입지 않는 공간이다. 자기 입장을 사실관계를 빌어 말하더라도 곧바로 정죄 받지 않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해와 공감을 기본으로 갈등의 문제 앞에서 한 개인이 직면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가 생겨나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어느 구조보다 교회는 사회치유를 위한 안전한 공간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본다. 복음의 정신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관계망이 안전한 공간을 형성하여 한 개인의 문제를 치유하고 사회적 병리현상을 하수로 흘려보내는 일들을 교회가 해낼 수 있으리라 본다. 언젠가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의 언어들이 신앙의 언어에 앞서 나오는 날들을 기대해 본다.

정진 목사 / 회복적정의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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