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하는 마을'의 흔적을 찾아

[ 교계 ] 기독교역사학회, 구세동교회 연구 프로젝트 발표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4년 04월 07일(월) 17:11
   
▲ 학술발표회가 열린 이날 세미나실에는 구세동마을에 남아있는 무덤 비문의 탁본이 전시됐다.

북간도 구세동교회 연구 프로젝트 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모은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이진구)는 지난 5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열린 제324회 학술발표회에서 '구세동 한인촌과 교회공동체 현지 유적조사' 프로젝트의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프로젝트는 한국기독학생회(IVF)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구세동은 '구세주를 믿는 마을' '세상을 구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함북 길주 출신 이종식과 그 가족, 친척 등이 개척한 교회를 중심으로 유기적인 신앙공동체가 형성돼있었다. 현재는 오랜 세월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공동묘지와 마을의 터만이 남아 있다.

구세동교인들은 주일에는 "농기구도 안식해야 한다"며 이웃간에 농기구도 빌려주지 않을만큼 철저한 신앙을 지켰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단, 6일간 게으르게 일한 사람은 안식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감신대 이덕주 교수는 "지금 구세동엔 교회가 없다. 해방 후 예배당은 폐쇄됐고 교인 가족들 대부분이 마을을 떠났지만 십자가 문양을 새긴 비석 등 곳곳에 '예수 마을'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이번 연구프로젝트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구세동마을의 공동묘지에서 발견되는 비문은 굉장히 독특한 점이 비석 자체가 하나의 족보로 대대손손 신앙을 전수하기 원했던 이들의 '뿌리 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날 학술발표회에는 192∼30년대 평양YMCA의 조직 및 활동에 대한 연구 결과도 함께 소개됐다.

당시 YMCA가 발간한 잡지 '청년' 및 주요 신문 자료를 토대로 이를 분석한 송재원 국가보훈처 연구원은 "192-30년대  평양Y는 단순히 기독교 청년사회운동의 범주를 넘어 평양, 더 나아가 서북지방 일대에서 펼쳐진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자 거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