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빚진 죄인(상)

[ 은혜의뜨락 ] 은혜의뜨락

오성건 장로
2014년 03월 31일(월) 17:41

1939년 7월 땅거미 내려올 무렵, 눈을 들면 산이 보이고 돌아가면 강이 보이는 아름다운 금수강산, 녹두장군 정봉준이 농민봉기 횃불을 든 두승산 끝자락 말목장터에서 필자는 태어났고, 아버지는 별 성(星)자에 열쇠 건(鍵)으로 작명하시니 '하늘의 별과 문을 열고 닫는 열쇠를 소유한 자'되라는 뜻이리라.

이 땅에 태어나고 자라고, 8.15해방과 피바람 몰아치던 6.25전쟁의 상흔이 속살을 드러내 가난을 운명으로 알고 살았던 거친 세상. 세상의 풍파와 역사의 소용돌이란 긴 여정 속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만나고 헤어지며 또 스치고 부딪히며 웃고 울며 뿌리고 거두면서 울분도 하고 고뇌했던 나를 애워싼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오래된 기억 저편의 아름다운 향수로 되살아난다. '아! 하나님은 오늘 이렇게 하시려고 그때 그렇게 하셨구나'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깊은 사랑을 믿음으로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약관엔 가난한 민휼을 돕는데 뜻을 두었고, 중앙대 법학과 1학년 재학 중엔 자원하여 입대해 최전방 대성산 고지에서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켰으며, 제대 후 고시를 준비하던 중 주님은 그 길보다 방송언론계로 보내 주셔서 보람있고 후회없는 한평생을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

방송계 입문의 첫 근무지였던 대전은 100년 전 미국 선교사로부터 처음 주님을 영접한 장로ㆍ권사님 가문에서 태어난 청순하고 곱게 자란 대농의 막내딸 요조숙녀를 주님이 배필로 주시어 1968년 1월 전주 봉래원에서 증경 총회장 고 김윤식 목사님의 주례로 예식을 올려 설레임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한 곳이요, 3남매를 선물로 받은 곳이며 부족하지만 장로로 기름을 부어 세움받은 곳이요, 아버님을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곳으로 그 곳에 희노애락이 흠뻑 잠겨 있어 지금도 가끔 꿈에서 찾아가 노니는 곳이다.

이제는 오순도순 함께 살던 아이들이 잘 자라 각각 귀한 믿음의 가정에서 배우자를 만나 둥지를 떠났고, 친손자 둘과 외손자 둘을 안겨 주셨으니 이 은혜 어찌 갚으리요.

1978년 12월 12일 불혹되기 한 해 전, 팔삭둥이같은 필자를 구속해 주신 은총도 고마운데 주님은 어찌 보시고 버거운 장로 직분을 기름부어 세워주시어 그 감격과 첫 믿음을 변치않고 지키려 애쓰며 오늘까지 몸부림쳐 왔으나 장차 주님이 허물 많은 필자에게 무어라 물으실런지 못내 떨리고 두렵기도 하다.

부족한 사람을 장로로 세우신 주님의 깊은 뜻은 분명 제일 먼저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라는 뜻이요, 가장 낮게 종으로 섬기라는 분부이시며, 순교자 반열의 제일 순위로 살라는 명령이신데 돌아보면 그러하게 살지 못했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제 남은 때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낮은 데로 더 낮은 데로 욕심도 비우고 마음도 비우며 하늘에 뜻만 채우며 살수 있도록 주님이 도와주시기를 소원한다.

33년을 오직 한길을 걸으며 대중이 잠들었을 때 조용히 깨워주며, 분노하고 흥분했을 때 달래주고, 웃다가 편히 잠들게 하는, 그리고 오래 오래 생각나는 재미있고 유익한 그런 방송 되도록 긴 밤 새워 고뇌하며 속절없이 청춘 거기 다 묻었더니 마침내 그 공이 인정받아 1997년 9월 3일 한국방송 70주년 기념식장에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오성건 장로
송정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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