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

[ 목회·신학 ] 신학명저마당<1>

이상은 교수
2014년 03월 24일(월) 15:29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로마서 강해가 담고 있는 이 유명한 명제는 20세기 신학의 수맥을 바꾼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 이전 시대를 지배했던 자유주의에 대한 철저한 단절이 여기에서 표명되었다. 가톨릭 신학자 칼 아담은 "자유주의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라는 유명한 말로 그 의의를 평가했으며, 후에 바르트 스스로도 자신이 어렸을 때 어둠 속에서 당겼던, 그렇게도 크게 울렸던 교회당 종소리처럼 이것이 그토록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줄 미쳐 몰랐었노라고 회고한 바 있다.

오늘날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는 20세기 초반 '변증법적 신학'을 대표하는 고전적인 저서이자 후에 '교회교의학'을 통해 전개되었던 계시신학의 핵심사상을 보여주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이 나오기 이전까지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에 근본적 질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역사로부터 이해되어야 하며 사회운동이 곧 현존하는 예수라고 이해하였다. 그리고 사회개혁이 곧 하나님 나라의 표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1915년 받볼에서의 블룸하르트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과는 구별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또한 '성서' 안에 낯설고 새로운 세계가 있으며 특히 로마서를 통해 사도바울이 자신을 성서적 증언의 진리 속으로 이끌어주는 안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1919년 출판된 '로마서 강해'에서 바르트는 이제 하나님과 세상의 질적 차이를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새로운 분이다. 하나님은 세상속에 있던 분이 아닌 '오고 계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오심은 기존 세계를 변혁시키시며 바꾸신다. 세상의 변혁은 인간으로부터 시작될 수 없다. 스스로 경건하게 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역사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씨앗'처럼 이식되고 성장한다. 이 씨앗은 곧 그리스도이다. 죽음의 권세를 극복하는 길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가 온전히 그리스도의 지체가 될 때까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이 세계 속에서 커져가며, 세상을 변혁하고 새롭게 성장해 나간다.

이 로마서 강해 1판에서 바르트는 그러나 인간의 긍정, 역사의 내재성이라는 측면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 새로운 나라의 씨앗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 속에 '장소'를 갖고 있다. 이것은 인간적, 역사적 방법으로 성장하며, 인간의 동참이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이러한 역사내재적 구조는 여전히 바르트의 마음에 차질 않았다.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의 절대성, 하나님 나라의 영원성이 더 철저하게 강조되어야 했다. 그는 결국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개정작업을 결심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존에 존재하던 모든 것 이전의 혁명이며 모든 혁명들 이전의 혁명"이어야 했다.

이제 1922년 출판된 로마서 2판에서 바르트는 세상의 긍정, 세상 속에서 자라나는 하나님 나라라는 요소를 완전히 폐기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하게 세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원은 인간적 삶, 육신적 삶의 부정이다. 하나님은 세상이 알 수 없는 분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영역 속에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늘에 있다." 그러나 "너는 땅에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적 세상을 부정하는 '전적타자'이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 속에 있는 나라이다.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인식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 분은 세상의 역사적 차원에 속하지 않은 원역사이며 세상의 역사로 알 수 없는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의 가능성'이다. 이러한 인식은 영원이 시간과 만날 때 일어나는, 마치 수학의 탄젠트 곡선이 스치듯 지나가는 접점과 같은 순간에서 일어난다. 이것은 역설이고, 기적이며, 특별히 '믿음' 속의 기적이다. 그리고 '시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러한 계시는 인간을 한계와 마주치게 하신다. 이 영원과 시간의 만남은 위기를 가져온다. 즉 하나님은 세상과 역사의 '위기'이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세계 역사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는 종말론적 현실이다. 세상은, 그리고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하나님의 심판 안에 있다. 이러한 종말역사에 대해, 바르트는 2년 뒤에 저술했던 고린도전서 주석에서 그것은 곧 세상의 사멸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모든 것의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철저한 차이를 강조했던 로마서 강해는 그 이후의 신학전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더 이상 자유주의 신학이 발을 붙일 여지가 없어졌다. 물론 한편으로는 2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급진적인 단절 탓에 오늘날의 신학계에서는 1판이 더 학문적인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되기도 하고, 바르트 스스로도 후에 '하나님의 인간성'에서 보여주듯 56년에 이러한 견해를 수정하는 입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로마서 강해, 특히 2판은 바르트의 타협하지 않는 신학정신을 보여준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심판 안에 있는 자로서 자신을 인식하며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재정립하게 한다. 인간 스스로가 아니라 오직 은총이신 하나님만이 소망이 되시고 구원이 되신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신실하신 하나님의 계시, 인간의 불가능성과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을 녹여낸 위대한 신학의 정신을 담고 있는 저작이 바로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이다.

이상은 교수 / 서울장신대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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