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바라보는 교회 (4)문화분야

[ 특집 ]

박양식 교수
2014년 03월 18일(화) 16:09

"스스로 왕따인 것부터 깨달아야"

교회ㆍ기독교인 배척하는 문화 현상 만연
세상 속에 들어가 '기독교 역할' 찾아야


교회가 문화를 세상과 동일시하던 때가 있었다. 문화에 관련된 사역을 한다고 하면 "왜 복음이 아니고 문화냐"고 물으며 세상적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다가 청년들이 교회에서 빠져 나가면서 교회는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동안 교회의 문화적 접근은 대체로 세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방어주의적 접근으로서 세상 문화의 타락성과 저질성을 강조해 세상 문화와는 거리 두기를 권했으나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둘째는 기회주의적 접근으로서 대중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적당한 시점에서 복음을 전하는 노력을 했으나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일반 성인들까지도 교회를 빠져나갔다. 셋째는 정복주의적 접근으로서 교회의 힘으로 음란하고 폭력적이고 잡신적인 문화를 척결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그런 문화는 여전히 줄지 않았다.

문화를 향한 교회의 접근이 그다지 먹혀 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점점 더 세상 문화와 격차를 느끼며 좇아가기도 바쁘다며 허덕인다. 여기서 좇아간다는 것은 따라간다기보다 이해하여 복음적 방향의 변혁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뜻한다. 그런 문화적 지체를 겪다보니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이 점점 위축되는 감마저 든다.

세상 문화를 좇아가기도 바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를 하나 발견했다. 자녀를 결혼시키는 나이대의 일반인들이 나누는 결혼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교인과 비교인 사이에 드러난 문화적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고 놀랐다. 자기 친구들이 자녀의 결혼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일반적인 조건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결론을 내렸단다. "내 아이 배우자는 교회만 안 다니면 돼"가 그것이다. 이 말에 다들 "맞아 맞아"하고 맞장구쳤다면서 교회 다니는 자기 눈치는 하나도 안 보았다고 한다.

예수님을 믿는 교인들은 믿는 자들과 결혼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이제 세상 문화 속에서는 교인은 자녀들의 배우자감에서 배제하는 문화 풍조가 생겼다. 교회만 안 다니면 자녀의 배우감으로 만족한다는 세상의 문화 분위기는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의미있는 시선의 징조다. 이에 대한 교인의 현실감은 매우 처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 사람들은 교회 교인을 자신들의 삶의 문화권에서 배제의 논리를 적용 중이다. 교인은 문화의 주변으로 밀려나 격리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 현상에 대해서 우리 교인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현실 문화를 좇아가기는커녕 배제당하고 있는 현실감을 알지 못한 채 자기 주장만 내놓는다면 전혀 호응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왕따를 당한다는 것이다. 교회와 교인이 사회와 문화 속에서 주변부로 완전히 밀려나 있는 현실 속에서는 복음의 전파는 그렇겠지만 교인으로서의 삶도 고립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도 아직 그리스도인의 위상이 있다고 생각할 교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직 쥐고 있는 힘이 남아 있어서 들어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힘조차 없어지게 될 때에도 우리 그리스도인에 대한 믿음과 존경을 표시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이런 우리의 문화적 위치를 직시해야 뚫고 나갈 길이 보인다.

우리의 문화적 위치에 대한 자각을 위해서 보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기독교 문화로 세상 문화를 변혁하겠다고 나서는 행동이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기독교적이거나 반기독교적이라 생각되는 대중문화에 대해서 반대 또는 추방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근자에 있었던 일로 영화 '다빈치 코드'나 레이디 가가 공연을 예로 보면 기독교적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여 상연 내지 공연 금지 운동을 벌였다. 문제를 지적하고 경각심을 일깨운 것은 필요했으나 그 결과는 오히려 의도와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반대한 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더 일으켜 크게 홍보해 줌으로써 무관심으로 외면당할 것이 성공한 것이다. 이런 것을 맛본 기획자들은 아예 의도적으로 기독교를 자극하여 자신의 홍보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쓰게 되었다. 일부러 비기독교적인 면을 인터넷 상에 흘리고 교인들이 그에 반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 문화에 대한 우리 교회의 대응은 세상에 이용당하는 것이 아닌지 따지며 뱀 같이 지혜로운 문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 문화가 사회 일반에서도 작동하는 공공적 가치를 상실한 채 교회 안에서만 유용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독교 문화하면 자꾸 교회 안에서만 가치를 지닌 것으로 위축되고 있다. 우리끼리 문화에 빠진 것이다. 문화란 특정한 사회적 생활방식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고유한 원리를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 특정 집단에서만 작동하고 공공적 가치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된다면 그만큼 가치와 영향력은 없어진다. 달리 말해서 기독교 진리의 문화적 표현이 별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성은 문화로도 작동돼야 하는 것이기에 현재 교회 문화가 교회 안의 문화로만 사사화(私事化)되는 현상의 심각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대중이 무시와 외면할 수 없는 기독교 문화의 위상을 갖기 위한 전면적 문화전략의 수정이 필요하다.

뱀 같이 지혜로운 문화전략을 가지고 올 한 해 의미있는 문화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원론적 접근 태도를 지양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동안 교회 문화를 논할 때 이원론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기독교적이다 아니다만을 따지는 식의 논리로 세상 문화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처럼 자기 기준만이 강화되면 베드로가 환상 중에 하나님이 먹으라 한 음식을 속되다며 거절한 것(행 10:9~16)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한 것을 속되다며 거절하는 것은 율법적 내지 문화적 자기 고집에 불과하다. 교회는 문화선교 사역을 함에 있어 그동안 지향했던 이원론적 접근을 내려놓고 세상 문화 속에 뛰어들어 새로운 복음전파의 역사를 이루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 일은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그 울타리를 넘어 문화 속에 뛰어들어야 가능하다.

다음으로는 세상 문화 속에 뛰어들어간 후에 새 문화 창조를 위한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이 역할지향적 접근이라 하겠다. 이미 실패한 방어적, 기회주의적, 정복주의적 접근에 대한 대안이라 판단된다. 이에 대한 모델은 유라굴로 광풍으로 죽음 직전의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발휘하여 해법을 제시한 바울의 역할에서 찾아진다. 역할지향적 접근은 문화현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그 안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관점들의 입장에도 서 보는 것에서 출발하여 당면한 문화현실이나 상황이나 이슈에 대해서 기독교 역할을 찾아 세상을 이끄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세상 문화에 대한 전투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 사람들이 살기 위해 따를 수밖에 없는 문화적 해결을 제시하는 역할지향적 태도는 새 문화를 창조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양식 교수
숭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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