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방식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sscc1963@hanmail.net
2014년 03월 18일(화) 13:51

   
 

인사이드 르윈 (에단 코엔/조엘 코엔, 드라마, 15세, 2014)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으나 대체로 인생을 생각하게 될 나이에 이르면 누구나 인생을 생각한다. 장밋빛 인생이든 아니면 흑백으로 처리된 것이든, 말로 하든 행동으로 보여주든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생을 이야기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질문을 갖고 백가쟁명의 기치를 들고 덤벼들기도 하지만, 선술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울분을 토로하면서 묻기도 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 향과 함께 달콤한 인생을 노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친 노동 현장에서 말하기보다 묵묵히 살아가는 것으로 인생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전체 인구 가운데 몇 퍼센트 되지 않는 성공적인 인생에 이끌려 그야말로 무지개를 잡으려는 듯이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고, 단지 그 비슷한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전혀 무관한 듯이 사는 사람들도 있고, 1%에 속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도 그런 사람들을 각종 음식거리로 소비하며 인생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세 사람의 쫓고 쫓기는 구도 속에서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인 가치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영화계에 강한 인상을 남긴 코헨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은 그야말로 인생을 말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아 만든 것이고,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들을 곳곳에 배치해 역사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지만, 사실 코헨 형제는 실화 여부에 전혀 구속받지 않은 것 같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로큰롤 음악 세계를 휩쓸던 60년대에 컨트리 음악으로 활동하던 무명 뮤지션, 하루하루 잠자리를 구걸하면서 뉴욕의 라이브 카페를 전전하는 솔리스트, 팔리지 않은 음반의 주인공, 소속사에게 인세를 달라고 조르는 모습, 숙박할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오가며 기생하듯 살아가는 모습, 꿈과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다며 핀잔을 듣고, 친구 애인의 임신 소식과 동시에 배속의 아이가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난처한 상황 등은 르윈의 현재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게다가 음악에 대한 자부심 하나만은 대단하나 돈 벌 기회는 계속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뿐이다. 이런 삶을 두고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런 인생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
 
음악 영화이면서 또한 로드 무비의 형식을 띤 '인사이드 르윈'은 통기타에 실린 노랫말이 주는 음산함과 주인공 르윈의 눈빛과 턱수염에서 풍기는 우수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의 다소 실패한 듯한 인생 이야기로 가득하다.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흔히 기대할만한 극적인 전환도 없다. 해가 뜨고 해가 지듯이,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마감할 뿐이다. 집나간 고양이가 다시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듯이, 그렇게 무작정 집을 나섰다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베푸는 호의를 받으며 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양날 선 독설을 통해 마음이 마구 난도질당하기도 한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를 결코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또 비집고 들어가지도 못한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혀 뜻밖의 반응을 얻고 심지어 독설을 듣기도 한다. 음악이 아닌 다른 길을 가려고 해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 인생은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맘과 뜻대로 안 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하려는 듯이 보인다. 코헨 형제가 르윈의 내면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인생은 이런 것이다.
 
코헨 형제는 인생을 규정하기보다는 이렇게 살아가는 르윈의 내면을 통해 인생을 보여주기 위해 제목을 '인사이드 르윈'으로 붙인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의 내면은 어떠할까?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그야말로 사형수가 교살형을 앞두고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잘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죽고 싶은 마음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일상은 변함없이 반복된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오늘 죽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 뭐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희망 없는 삶을 살면서도 쳇바퀴 돌듯이 그렇게 살아가는 한 뮤지션의 인생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코헨 형제가 영화를 통해 설명하는 인생을 정리하자면, 이럴 것이다. 인생이란 그야말로 매일같이 죽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계속 반복되는 시간의 궤도를 따라 최소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정도면 88만원 세대들에게 매우 설득력 있는 인생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력은 있되 시대를 잘못 만나 그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카타르시스가 될 것이다. 이에 비해 인생 대박을 꿈꾸면서 온갖 권모술수를 부리는 인생에 비하면 대단히 단출하고 또 소박해서, 현 세태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동경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