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수, 에릭 리들의 기적

[ 목양칼럼 ] 목양칼럼

현오율 목사
2014년 03월 17일(월) 16:23

에릭 리들(Eric Liddell, 1902-1945)은 영국 선교사 자녀로 중국 천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선교사의 자녀로서 먼거리를 걷고 달리던 습관이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육상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에딘버러 대학에 입한한 뒤 본격적인 육상선수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당시 수년간에 걸쳐 전 영국 단거리 육상대회를 석권하였으며,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럭비팀에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에릭은 영국대표로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 경기의 금메달 후보였다. 그러나 100m 경기일정이 주일이었다. 그는 "저는 주일에는 안뜁니다. 주일날은 예배를 드려야합니다"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다. 그의 결정은 주일성수를 위한 자기 희생적 결정이었고,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신앙의 결단이었다.

에릭의 100m 출전 포기를 들은 영국인 전체의 반응은 매우 냉소적이었다. 그를 두고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끝에 달고 다니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자'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에릭은 100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 6일 주일에는 스콧츠 커크장로교회에서 평소처럼 성도들에게 간증하였다. 그후 에릭은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200m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m에도 출전하였다. 그는 사실 400m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였다. 에릭은 신들린 사람처럼 400m를 마치 100m를 뛰는 주법으로 달렸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나 에릭은 '47초6'이라는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승전 테이프를 끊고 쓰러진 에릭의 손에는 한 쪽지가 쥐어져 있었다. 그가 결승전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준 것인데,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삼상2:30)"는 말씀이었다. 그는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처음 200m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해 뛰었고, 나머지 200m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뛰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주일은 '주님을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고백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올림픽 경기로 국가적 영웅이 되었지만, 에릭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 이듬해 영웅으로서의 세상 영광을 내던지고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24세의 젊은 나이로 중국 선교사로 떠났다. 에릭은 12년간 텐진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했으며, 그후 7년 동안 산둥 반도의 곳곳을 다니며 농촌 지역에서 선교하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몇 년간 1,800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본군 치하 웨이시엔의 수용소에 갇혀 지내며 타인들을 격려하는 삶을 살다가 43세인 1945년, 19년간의 선교를 마치고 순교하였다. 감옥에서 숨질 때 그의 얼굴은 빛이 났고, 성도들의 찬양과 경배 속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에게서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중국 웅방시 감옥 옆 작은 동산에 그를 안장하였다. 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실천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 하였다.

미국의 뉴욕과 뉴저지를 연결하는 조지와싱톤교는 높이가 600피트(180m), 길이가 3,500피트(1km)인데, 이 다리를 매달고 있는 4개의 쇠줄은 2만5,000개의 철사로 1야드 부피로 꼰 것으로써 전부를 한줄로 이으면 지구를 4바퀴나 감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꼬이고 뭉친 힘이 연간 1천만대의 차량이 통행하는 다리로 70년간 문제없이 지탱하고 있다. 한 오라기의 얇은 철사, 한 개의 나사와 쇠붙이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서로 연합하여 협동하는 힘이다. 이제 사분오열(四分五裂)된 한국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욕심과 사심을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로 하나가 되어 힘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 투자하여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겸손한 자세로 살아 한다면 병든 이 땅을 살릴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현오율 / 목사 ㆍ 대구 충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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