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를 향한 여정

[ NGO칼럼 ] NGO칼럼

정진 목사
2014년 03월 11일(화) 09:48

남양주시의 한 상담센터에서 '회복적대화모임'이 열렸다. '회복적대화모임'이란 어떤 사건의 피해측과 가해측이 함께 만나 조정자의 진행에 따라 당사자 간에 대화를 나누는 모임을 말한다. 사건은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학교폭력 사안이었다. 방과 후에 열리는 독서동아리 모임에서 6학년 남학생이 5학년 여학생의 얼굴을 심하게 때린 사건. 때린 이유는 동아리 학생 대표였던 남학생의 의견을 5학년 여학생이 지속적으로 깐죽대고 비아냥거린다는 거였다. 평소에도 후배 여학생의 행동이 마뜩찮던 남학생은 당시 분노가 폭발하면서 몇 차례 주먹으로 여학생의 얼굴을 때려 코피가 나게 했다. 여학생은 입고 있던 옷이 다 젖을 만큼 상당량의 피를 흘렸다. 그 자리에 있던 동아리 아이들은 남학생의 갑작스런 폭력 행위와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여학생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겁에 질려 머리를 움켜잡고는 해리현상의 반응까지 보였다 한다.

아이들 간의 벌어진 사건은 곧바로 부모들 간의 문제로 번졌다. 동아리 모임에 참여했던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은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가해학생의 부모를 압박해 갔고, 당사자 간에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은 틈을 타고 서로의 원망과 비난이 소용돌이치며 갈등의 수위를 높여 갔다. 회복적대화모임이 있기 전까지 평범했던 가족과 학교는 순식간에 분쟁의 당사자가 되어 상대방을 '적'으로 대상화시켰고, 피해측과 가해측은 이 문제의 핵심에 서서 2차 피해를 주고받으며 자신들의 분노를 쌓아갔다. 아이들은 서로 만날 수 없게 되었고 동아리 모임은 중단되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부모가 내뱉는 원망의 목소리에 삼켜져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피해측은 아이를 위해 회복의 과정을 찾기보다 가해학생이 처벌당하는 것으로 그 정당성과 회복이 동시에 일어날 것처럼 믿었다. 가해학생은 그 부모들 뿐 아니라 주변인들에 의해 스스로 수치심을 곱씹어야 하는 고통 속에 정당하게 내던져졌다.

얼마 후 누군가가 이 엄청난 갈등의 문제에 휩싸인 이들에게 회복적 정의를 통한 대화모임을 소개했다. 조정자로 나선 필자는 각 당사자들을 따로 만나 그들 나름대로의 맥락을 듣고 갈등의 정황을 정리해 대화모임을 준비했다. 대화모임 당일 날, 양측의 부모들과 아이들, 당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동아리 학생들과 부모들 모두가 자리했다. 모임이 시작되자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뉜 당사자들은 그 동안 본인이 지녀왔던 감정의 왜곡과 아픔을 토로하면서 다소 격앙된 분위기를 만들었다. 주로 부모들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거나 관철시키기 위해 벌이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주변에 있던 부모들까지 가해학생을 비난하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무언가 몰아가는 느낌의 얘기를 하려고 달려들었다. 조정자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진행되는 방식과 통제가 아니었다면 서로 간에 더 큰 상처를 주고받았을 상황이었다. 함께 한 이들은 마치 가해자에게 더 큰 처벌의 고통과 수치심으로 책임을 지우고 확실히 죄인으로 낙인을 찍는 것만이 그 아이를 깨닫게 만드는 것이고 동시에 피해학생을 위하는 길이라 여기는 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불편하고 삐걱거리는 고철 덩어리 같은 양측의 만남은 지난 과거의 시간을 함께 공유해 가면서 점차 모종의 자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갔다. 사실관계가 정리되고 나니 감정에 사로잡혔던 서로의 현실이 서서히 드러났다. 불신의 안개가 걷히고 의사소통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힘겨운 씨름을 몇 번이나 더 하고 난 후에야 결국 위기상황까지 치달았던 아이들 간의 폭행사건은 피해자 가해자 간의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앞으로 서로를 배려한 거리 두기 등의 합의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함께 참여한 동아리 아이들과 부모들 역시 이 합의사항이 잘 지켜지도록 돕는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피가해자로 분리됐던 장벽이 모두의 약속과 참여를 통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치열했던 대화모임이 끝나고 나서 가해측 학생의 아버지가 조정자에게 인사를 건네게 위해 다가왔다. "저 사실은 제가 목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잘 양육하지 못해 벌어진 일인데 이렇게 갈등의 문제가 힘들게 할 줄은 몰랐어요. 마치 제가 어둠 속에 있다가 빛 가운데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것이 용서와 화해의 신비라고 생각되네요." 아버지의 고백은 그간의 마음고생이 훤히 들여다 보일만큼 큰 울림을 전해 주었다. 얼마동안 갈등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웃음 띤 얼굴로 마주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야곱이 에서와 재회하면서 전심의 마음으로 고백했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창33:10). 우리 시대, 용서와 화해를 향한 진정한 씨름이 필요하다. 그 씨름에 우리네 교회가 참여해 나가길 소망해 본다.

정진 목사 / 한국평화교육훈련원 회복적정의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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