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자비량 선교' 이강백 장로

[ 선한사마리아인 ]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4년 03월 10일(월) 10:54
   
▲ 이강백 장로.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칠레로 떠난다구요?"

모두가 만류했다. 안정된 생활을 접고 머나먼 남아메리카 이국땅에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그를 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국내 모 그룹에서 부사장 승진이 확정된 전무이사, 노후준비를 슬슬 시작할 50대 중반의 나이, 대학 입학을 코앞에 둔 외아들을 둔 가장. 이강백 장로(상도교회 은퇴)가 칠레에 자비량 선교를 떠나기 전의 상황이다.

이 장로는 "남이 볼 때 편안한 생활을 누렸다고 하겠지만 만족감이 없었다"며 "나이 50을 넘기며 내가 도대체 주님을 위해 무엇을 헌신했던가를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이 장로는 당시 상도교회 선교부장이자 안수집사로, 교회 선교지역인 칠레에 의료선교를 다녀오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현지 선교사의 요청도 있었지만 스스로 신앙갱신이 필요하다고 보고 주점함 없이 선교헌신 결단을 내렸다.

회사에서는 사표를 수리해주지 않았다. 결국 출국날까지 사표가 수리되지 않아 그냥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룹 회장은 "돌아오면 언제든 다시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부인 박옥자 장로(김포상도교회)는 "뜻을 따르겠다"고만 말했다. 4대째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난 부인은 이 장로의 신앙을 한단계 성숙시켜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장로는 상도교회 파송으로 선교부 부원들과 십시일반 헌금해 칠레 테무코에 병원을 세웠다. 정부에서 택지를 제공하고 85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이 건축됐지만 초기에 상당한 자금난을 겪었다.

행정원장으로 급여도 받지 않고 자비를 계속 쏟아부었다. 그러면서도 상도교회에서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성도들의 헌금이 답지해 "힘이 됐다"고 이 장로는 밝혔다.

이 장로는 "우리나라와 의료시스템이 완전히 달라 생각만큼 선교가 쉽지는 않았다"며 "현지 의사들이 기득권을 주장해 고초도 많이 겪었지만 이동진료를 비롯한 의료선교를 계속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다. 동역자들이 개인사정으로 칠레를 떠난 상황에서 홀로 남은 이 장로는 상도교회와 협의해 칠레의사협회에 병원을 기부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돌아온 후 이 장로는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하기도 했다. 이 장로는 "주님을 위해 짧게나마 선교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내 힘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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