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3월 10~15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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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04일(화) 11:48

월-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본문 : 욘 1:3~6
찬송 : 531장

요나가 아무리 숨고 도망을 칠지라도 하나님이 반드시 찾아내신다.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피하여 세상 속으로 숨어있을지라도 한번 택한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이 찾아내신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하나님은 인간이 살 수 없다는 호렙산에도 계셔서 모세를 부르셨다. 이 때 모세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는 줄 짐작도 못했기 때문이다. 야곱이 척박한 계곡인 벧엘에서 잠잘 때 하늘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부르셨다. 빌립보 감옥에서 죄수의 쇠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깨달아 자살하려고 할 때 사도들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설교를 들었다.
 
요나가 타고 가던 배가 갑자기 풍랑을 만나자 뱃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불렀다. 각자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목숨을 걸고 기도했지만 파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하나님이 요나를 불러내기 위한 폭풍우를 이방인들의 신이 무슨 능력으로 잠잠하게 할 수 있겠는가? 선장은 결국 배 밑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요나를 깨우면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고 말했다. '깊이 잠이 들다'의 히브리어는 '라담'으로 Nicla교수는 성경에서 두 번 사용되었다고 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숲속에 숨어있을 때 이 단어를 사용했고 요나가 배 밑에 내려가 잠을 자고 있을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덴동산 숲에 숨어 있던 아담이나 배 밑에 숨어서 잠을 자던 요나나 저들은 다 지쳐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지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숨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사명을 맡은 나에게 명령을 내리실 때 '일어나라'는 명령을 사용하신다. 여호수아 1장 2절에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요단을 건너지 않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17장 9절에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라고 명령하셨다. 절망적인 사르밧의 과부를 도와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가라'고 명령하셨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사명의 현장으로 갔다. 그러나 요나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결국 바다 한 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나 배에서 내려야 했다.
 
인생길을 잘못 가고 있으면 우리도 거기서 망설임 없이 내려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오늘의 기도
 
고집 세고 미련한 인생들을 사랑하시고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을 맡기시고 일어나 가라고 명령하실 때 그 길을 믿음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용숙 목사
/보성교회


화-믿음으로 해석합시다
본문 : 사 38:15~20
찬송 : 373장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나님 말씀대로라면 히스기야 왕은 가족들과 신하들을 모아 놓고 유언을 해야 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유언 대신 기도를 선택한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왜 히스기야 왕은 유언 대신에 기도를 선택했을까? 히스기야 왕은 그 까닭을 오늘 읽은 이사야 38장 17절에서 고백하고 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히스기야 왕은 자신 앞에 놓인 질병이라는 고난을 하나님의 저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축복으로 해석했다. "하나님께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지만 이건 하나님께서 나를 미워하셔서 나를 멸망시키려고 나를 죽이려고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깨닫게 하고, 나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셔서 내게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이러시는 것이다. 나에게 이런 큰 고통을 더하시는 것은 나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시려고 이러시는 것이다." 이렇게 히스기야 왕은 자신 앞에 놓인 고난을 믿음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유언대신 기도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질병만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도 구원해주신다. 히스기야의 믿음의 해석이 옳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이 죽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도 히스기야 왕처럼 매사를 믿음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고난이 닥쳐올 때 고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야 한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성경 어디에도 요셉이 형들을 원망했다거나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말이 없다. 요셉이 형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형들이 나를 애굽에 팔았지만 거기에도 다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이다. 형님들이 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그리하신 거라고 말한다. 요셉의 말이 맞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겠는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히스기야 왕처럼 요셉처럼 고난을 믿음으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어떤 풍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주옵소서. 이 풍랑으로 인하여 주께 더 가까이 나아감을 알게 하시고 풍랑 속에서도 매사를 믿음으로 해석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성철목사
/운암신안교회


수-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
본문 : 막 4:1~11
찬송 : 620장

바람 끝자락에 봄내음이 아련하다. 아직 둘러보아도 꽃다지 새싹조차 감감무소식이지만, 성미 급한 농부들은 벌써부터 흙을 북돋으려 분주하다. 하지만 멀지 않았다. 검은등뻐꾸기의 또랑또랑한 인사와 함께 시작될 생명의 잔치, 봄이 다가온다.
 
마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씨앗과 관련된 비유를 세 가지나 이야기하신다. 오늘 본문 말씀인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그리고 '작은 겨자 씨앗의 비유'이다. 목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집 짓는 일보다 농사에 관심이 더 많으셨던 것 같다. 씨앗에 관한 세 가지 비유가 모두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 자라게 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피지 않고서는 말씀하실 수 없는 이야기이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농부들을, 그리고 경외감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자라나는 씨앗을 지켜보신 주님을 상상해보자. 주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인 이유는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우주의 창조로부터 이어온 하나님의 생명의 본질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부의 마음이 가장 아픈 순간은 뿌린 씨앗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할 때이다. 때문에 농부는 조심조심 씨앗을 뿌려보지만, 어쩔 수 없이 더러는 길가에, 더러는 돌밭에, 더러는 가시덤불 틈으로 굴러가 씨앗이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다. 또는 허무하게 새 모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농부는 그것을 지켜보며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농부를 지켜보신 예수님께서도 함께 안타까워하시고 아파하신다. 하지만, 농부는 안타까움과 아픔에 머물 수만은 없다. 좋은 땅에 떨어진 나머지 씨앗들을 돌보고 살펴야 한다. 그렇게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난 씨앗들은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성장을 이루어낸다. 그리고 그 순간 주님께서도 안도의 숨을 내쉬시면서 환환 웃음을 지으신다.
 
우리의 수고가 때론 헛된 일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괴롭고 힘들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신 우주의 섭리는 우리가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풍성하기 그지없는 열매를 맺는, 위대한 성장을 체험하도록 이끄신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놀라운 기적 속에서 살아간다. 단지 우리의 안타까움과 아픔에 가려서 우주에 충만한 생명의 신비를 깨닫고 있지 못할 뿐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작은 씨앗 하나를 보여주신다. 머잖아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풍성한 생명으로 활짝 꽃피울 씨앗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가 당신의 씨앗이 되어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진형 목사
/청지기교회


목-지금은 내면의 소리를 들을 때
본문 : 막 1:35~39
찬송 : 363장

사순절 주간이다.
 
지금은 조용히 하던 일을 멈추고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할 때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너무나 바쁘게 살아왔다. 주변은 복잡하고 시끄럽다. 그러다보니 우리 자신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귀먹고 말았다. 내면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소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들을 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새벽에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가능한 한 많은 지역에서 사역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열심을 발견할 수 있다. 언제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 속에 살고 계셨다. 모든 일에서 서두르지 않으시고 결코 초조해 하지도 않으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의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
 
첫째, 사역하시기 전에 기도하신 예수님이셨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쓰여 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눈에 보이는 부분이 있다. 복음전파, 병을 고치심, 귀신을 쫓으심,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신 놀라운 사역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사역도 있다. 그것은 밤새 기도하신 사역이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라고 쓰여 있다. 또한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고 했다. 조용히 홀로 묵상하고 계셨다.
 
둘째, 위기의 때를 아시고 기도하신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은 공생애 전 40일 금식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세 번 받으셨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을 승리로 시작하셨다. 또 하나의 예수님의 위기는 그의 사역 끝에 있었다. 십자가를 져야 하는 고통 앞에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외부로부터 오는 적은 말씀으로 싸워 이기셨고, 내부의 적은 기도로써 승리하셨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승리의 힘은 말씀과 기도가 그 원천이다.
 
그러면 오늘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있었으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이어받으셨다. 오늘 성도로서 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목마름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결여이다.
 
우리는 다시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인기와 명성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조용히 하나님 앞에 서서 내면의 소리를 듣고 행동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 합니다. 먼저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남식 목사
/남원산성교회


금-꺼져가는 심지를 활활 타오르는 횃불로
본문 : 삼상 30:1~6
찬송 : 91장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더는 다윗왕이다. 그는 사울왕도 쩔쩔매던 골리앗을 물맷돌로 단방에 쓰러뜨리고 왕의 사위가 되고 천부장의 지위에 오른다. 많은 고난이 있었으나 결국 유다지파의 왕으로 시작하여 통일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등극한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이라는 조그만 나라를 이방 제국들과 견주어 손색없는 하나님의 나라로 일으켜 세우고 아들 솔로몬에게 나라를 안정적으로 물려준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말을 즐겨 쓴 것을 보면, 이스라엘 대중들에게 다윗의 인기는 실로 하나님 다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런 다윗도 꺼져가는 심지처럼 낙망하고 실패한 적이 있었으니 바로 시글락에서였다. 시글락은 블레셋 땅이다. 다윗이 왜 그곳에 갔을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사람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대략 5년 여의 세월을 장인인 사울 왕을 피해 다닌 다윗이, 결국은 블레셋 땅 밖에 갈 곳이 없어 정치적인 망명을 하고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블레셋의 출전과 관련하여 다윗 일행이 아벡에 다녀온 사이에 아말렉에게 시글락을 털린 사건이 벌어졌다. 성읍이 불탔고 아내와 자녀들이 모두 사로잡혀 간 것이다. 다윗과 함께 한 백성은 너무도 허망하여 결국은 돌을 들어 다윗을 치려고까지 했다.
 
지난 수많은 세월을 충성심을 발휘하던 다윗의 부하들이 왜 돌을 들었을까? 여기에는 다윗의 실패한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께 기도해 보지 않고 원수인 블레셋으로 국경을 넘게 만든 일. 둘째, 삼상 27장에서 아말렉을 약탈하여 적을 자극시킨 일. 셋째, 블레셋을 도와 이스라엘을 치려고 아벡에 가면서 최소한의 경계 병력도 없이 시글락을 아녀자들만 남기고 무방비 상태로 만든 일이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데도 형통하다면 위기가 임박했다는 징조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나 그 위기는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세울 기회임을 다윗은 보여준다.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은' 다윗은 아말렉을 추격해 격파하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때론 뼈저린 실수와 실패로 '이제 내 인생이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이 승승장구 할 때에도, 실패와 좌절 속에서 몸부림 칠 때도 동일하게 '사람을 붙잡지 말고, 하나님을 붙잡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결국 꺼져가는 심지를 활활 타오르는 횃불로 밝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는 것을 다윗은 시글락에서 보여 주었다.
 
오늘의 기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시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언제나 말씀 붙잡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중호 목사
/수원명성교회


토-신앙생활의 좋은 자세
본문 : 마 16:1~4
찬송 : 436장
 

배드민턴 운동을 하면서 여러 목회자에게도 권해 보았다. 처음 자세를 보면 앞으로가 예측된다. 열심히 할 사람은 처음부터 자세가 다르다. 의욕을 가지고 복장과 장비를 갖춰 준비해 온다.
 
모든 삶에는 자세가 중요하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대하는 자세가 나온다. 먼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표적 신앙이다. 이들은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을 영접하기란 어렵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답변으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참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신다. 요나의 표적은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자기도 남도 함께 망하게 하지만, 순종하면 물고기 뱃속 같은 어려움에서도 건지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신다는 교훈이다. 하나님께 나아와서 불순종하고, 시험하는 자세는 하늘의 표적을 볼 수 없다. 잘못된 신앙의 자세는 천국의 신령한 복을 희생 없이 얻으려는 마음과 같다.
 
다음으로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도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의 신앙자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율법주의적 신앙, 형식적인 신앙에 대해서 주의하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떡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듣고 당황하였다. 제자들은 주님을 온전히 믿지 않아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할 때가 많지 않은가를 살펴야 한다.
 
예수님의 질문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니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답변한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며 직접 제자들에게 돌직구의 질문을 던지셨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답변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크게 칭찬하시고, 비로소 자기의 참 사역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이다. 참 믿음의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권세를 얻는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자세가 중요하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안에서 바른 신앙으로 천국백성의 기쁨과 소망으로 참 평안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무열 목사
/동대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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