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누구에게는 진짜이고 누구에게는 가짜이다

[ 말씀&MOVIE ]

최성수 목사 sscc1963@hanmail.net
2014년 03월 04일(화) 11:21

아메리칸 허슬(데이빗 O. 럿셀, 드라마, 청소년관람불가, 2013)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어떤 역할을 하며 산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일에서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은 클 수밖에 없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역할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역할이 강조되는 사회가 되면서 흔히 발생하는 일은 정체성의 문제이며 또한 진실의 문제이다. 다른 사람은 차치하고 당장 자신을 생각해보라.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때는 대체로 수많은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이것이 아니라는 의심이 들 때다. 역할과 나 자신이 다르다는 의심이 들 때, 바로 이때가 삶의 전환기이며,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이다.
 
이런 상황이 보편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진짜와 가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에게는 진짜이고 누구에게는 가짜의 모습으로 산다는 말이다. 가짜를 직업적으로 갖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도록 해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얻어낸다. 사기꾼은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가짜를 내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진면목을 대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짜를 직업으로 삼는 사기꾼이라도 적어도 누군가에는 진짜이다. 예컨대 최소한 동업자에게만은 진짜이어야 한다. 그래야 사기가 통한다. 영화 '도둑들'에서 볼 수 있듯이, 때로는 동업자에게조차도 가짜인 경우가 있어 결코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아메리칸 허슬'이 다루는 주제 역시 가짜와 진짜다. 1970년대 미국에서 사기꾼을 동원해서 시장과 몇 명의 국회의원을 구속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상상력을 동원해 재구성한 것이다. 미국의 정가에서 발생한 한 스캔들을 매개로 감독이 말하는 것은, 인간은 누구에게는 진짜이지만 누구에겐 가짜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진짜로 만들고 무엇이 가짜로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공감을 계기로 두 남녀는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두 사람 모두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다가 가짜의 삶을 살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두 사람은 급격하게 가까워지고,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 이른 사람들을 등치며 돈을 버는 사업에서 동업을 결심하게 된다. 비록 사기를 치는 일에서 동업이었지만, 서로에 대해서만은 진심을 교감했다. 그러나 결국 미국 FBI에 의해 붙잡히게 되는데, 그들을 체포한 경찰은 그들을 이용해서 더 좋은 기회를 얻을 계획을 세운다. 곧 사기 행각을 통해 네 명의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해준다면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성과를 올리기 위한 경찰의 욕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정치인의 욕망과 야망이 개입하며 진행되는 큰 사건으로 비약하면서 이야기의 갈등은 고조되고 절정에 이르게 된다. 감독은 이야기를 점점 확장하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하는 캐릭터를 적시적소에 배치시켜 영화에 몰입하게 했고, 또한 마지막에는 사방으로 흩어진 이야기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뛰어난 연출 능력을 발휘하였다.
 
두 남녀의 사기 행각과 그에 연루된 각종 형태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좌충우돌의 삶을 통해 인간이 진짜와 가짜를 살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로 감독이 제시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욕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누구에게는 가짜가 되게 하고, 또 누구에게는 진짜가 되게 한다. 필자의 관찰에 따르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게 살려는 욕망은 인간을 진짜가 되게 하고, 역할을 빌미로 자신을 관철시키거나 유익을 챙기려는 욕망은 인간을 가짜가 되게 한다.
 
가짜와 진짜의 문제를 인간학의 주제로 삼고 심리학적인 맥락에서 풀어나간 사람은 폴 투르니에다. 그는 가짜와 진짜를 역할과 내면의 진실의 문제로 보았다. 사람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내면의 진실, 실제 인간의 모습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오랜 세월을 함께 산 부부라도 그저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충실한 부부가 있는가 하면 내면의 진실을 서로 교감하며 사는 부부가 있다. 역할에 충실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는 몰라도,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참다운 인간은 역할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을 통해 발견되기 때문이다. 투르니에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역할 자체가 내면의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진짜인 듯이 보인다 해도 그것이 내면의 진실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그가 말하는 내면의 진실은 진짜 역할을 넘어 하나님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교역자,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역할은 우리를 결코 진짜로 만들어주지 못한다. 어떤 역할을 하든 중요한 것은 내면의 진실을 소통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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