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집중한 '로마서 강해'

[ 목회·신학 ] 현대신학산책

박만 교수
2014년 03월 03일(월) 16:47

칼바르트와의 가상대화(2)

필자 : 지난 시간에 선생님은 성경을 통해서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신학을 하고자 했다고 하셨는데 그런 시도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1916년에 출판된 조그만 책인 '성서 안의 새로운 세계'와 1919년의 '로마서 강해 초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일약 유명하게 하고 새로운 신학 운동의 중심으로 만든 것은 역시 1921년에 출판된 로마서 강해 제 2판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선생님은 자유주의 신학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하나님과 인간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결코 범접할 수 없는 분이며 그 분이 나타날 때 인간은 근본적인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 하나님은 인간에게 움켜쥔 주먹, 사방이 막힌 불벽과 같아서 그 분이 나타나실 때 인간의 모든 경건, 종교성, 윤리적 성취 등은 모두 죄악된 것으로 심판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셨고 그런 주장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로마 가톨릭 신학자 칼 아담 같은 분은 이 책이 마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이 떨어진 것과 같았다 했지요. 그리고 그로 인해 갑자기 유명 인사가 되신 선생님은 이제 목회자에서 신학자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선생님은 루터파 신학교인 괴팅겐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셨지요?

바르트 : 예. 그런데 당시의 저는 교수직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논박하였으나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신학은 아직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이로 인해 저는 모든 강의 때마다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개혁 교회의 창시자인 칼빈과 츠빙글리 및 그 대표적 신조인 하이델베르크 신조를 연구하였고 특히 17세기의 신학자 하인리히 헵페의 개혁주의 교의학에서 성서 중심적이며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 체계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저의 새로운 신학에 대한 모색은 중세기의 신학자인 안셀무스의 신학 방법론에 대한 연구인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Fides Quaerens Intellectum, 1931년)'에서 그 결실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에서 출발해야 하며 또한 계시를 있는 그대로 진술(description)하는 과제를 가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신학은 교회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교회의 학문이자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학문이며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에 의해 진행되는 학문이라고 하였지요.

필자 :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책에는 수많은 라틴어가 등장할 뿐 아니라 내용도 아주 어려워서 별로 읽혀지지 않습니다만 이 책은 선생님의 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로서 여기에서 정립한 신학 이해와 방법론으로 인해 선생님은 거의 36년 동안 계속되었고(1932-1968), 9400 여 페이지에 달하는 '교회 교의학'을 쓸 수 있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선생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의 하나인 나치 독일과의 대립 및 그 가운데 있었던 바르멘 신학 선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지요. 당시 상황이 어떠했나요?

바르트 : 아시다시피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에 패하고 베르사이유 조약을 통해 연합국 측에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물어주게 되면서 죄책감과 수치심에다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부담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전후의 독일은 수십 퍼센트에 이르는 실업률과 살인적인 인플레,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으로 나라 전체가 파멸의 늪에 빠져 들고 있었지요. 이런 가운데 히틀러가 나타나 독일 민족의 우수성과 사명을 말하면서 미래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자 독일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1930년의 제국 의회에서 히틀러의 나치스 당은  12석에서 107석으로 늘어났고 1932년 선거에서는 271석을 차지하여 압도적인 지배당이 되었으며 그 여세를 몰아 히틀러는 같은 해 1월 30일 바이마르 공화국을 종결시키고 독일 제 3제국의 총통이 되었지요.

박만 교수 / 부산장신대ㆍ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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