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바라보는 교회 (2)경제분야

[ 특집 ]

황호찬 교수
2014년 02월 28일(금) 15:18

돈에 약하기는 "신앙인도 마찬가지"

물질 … 신앙인의 영성ㆍ죄와 밀접한 연관
유혹 이기려면 성령 의지하고 탐욕 끊어야


세상 사람들은 잠시 논외로 하고 현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관심 혹은 고민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이해를 못하고 자주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평소에는 세상에 휩쓸려 적당히 살다가 나중에 일이 터진 다음에야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코 돈이라는 요물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왜 자주 돈 앞에서 무지하거나 아니면 무기력한 것인가? 그것은 돈이 단순히 돌이나 책상처럼 물질(it)만의 문제가 아니고 근본적으로 우리의 영성 및 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돈을 신(物神, 맘몬, 마 26:24)으로 섬기며 우리의 영혼을 팔아넘기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죄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을 등지는 것'을 죄라 칭한다면, 주님과 등지게 하는 주범이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조차 이 사실을 모르고 하루하루를 속고 산다는 것이다.

이 물신(맘몬)은 일단 식욕이 왕성하여서 닥치는 대로 집어 삼킨다. 가정을 파괴하고 나라를 파산시키며, 성도들의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도 무차별적으로 파멸시킨다. 물신의 전략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여 실체 파악을 어렵게 한다. 명망 있는 목사나 장로를 전면에 내세워 안심하게 한다. 교회의 리더만 쓰러뜨리면 나머지 성도들을 다루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때로는 '주님의 이름'으로 교란시키니 그 누가 물신 앞에 버틸 수 있겠는가. 이 물신의 세력은 무한하고 무자비하여서 그의 백성이라고 해서 피해가지 않으며, 교회라 해서 봐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대로 당하기만 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찌하던 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죽든지 살던지 성령에 의지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다른 묘책이 없다. 울어도 소용이 없으며 노력한들 달라질 것이 없다. 도시 한 복판에서도 방법을 찾을 수 없으며, 깊은 산속에서 홀로 지낸다 한들 해결되지 않는다. 호흡이 있는 그 순간까지, 발을 딛고 있는 한 뼘 그 땅까지 물신은 끝까지 쫓아와 우리의 영혼과 거래하자고 할 것이다. 세상을 호령할 수 있는 권력, 뭇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명예, 다른 사람을 조정할 수 있는 쾌감, 심지어 천국조차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속삭일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다음으로 물질에 대해 그토록 많이 가르치심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둘째, 겸손해야 한다. 노인이던 청년이던, 목사던 평신도던 그 누구든지 겸손해야 한다. 스스로 다지고 또 다짐하며, 돌아보고 또 두드려봐야 한다. 아무리 진실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끝까지 겸손해야 한다. 앞서가는 교회일수록, 존경받는 목사, 장로일수록 더욱 겸손해야 한다. 물신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순간이다. 잠깐 명예욕에 눈이 가릴 때, 잠깐 물욕에 한 눈을 팔 때, 잠깐 욕정에 몸을 맡길 때, 사탄은 그 틈새 그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셋째, 탐욕을 끊어야 한다. 말같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찌하던 탐욕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한두 번 피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지속적으로 끊고 또 끊어야 한다. 물신의 치밀한 전략을 아는가? 선한 욕심과 나쁜 탐욕의 구분을 모호하게 할 것이며, 큰일과 작은 일의 우선순위를 헷갈리게 할 것이다. 개인의 야망과 교회의 사명을 혼란스럽게 하며, 몇 사람의 독단에 의해 하나님의 돈이 낭비되게 할 것이다. 탐욕을 끊는 길은 마음을 가난하게 비우는 것 외에 길이 없다. 지상 교회는 마음이 가난해야 천국 교회의 형상을 닮게 되며(마 5:3), 그런 교회가 결국 '하나님께 부요'하다는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눅 12:31). 탐심은 개인 뿐 아니라 교회의 영혼을 좀먹는 바이러스이며 우상숭배임을 매 순간 기억해야 한다(골 3:5). 우상숭배,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배신행위다.

넷째, 정직하고 진실 돼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일관성 있게 그리 되어야 한다. 사람은 몇 번 속일 수 있겠으나 우리의 생각과 마음조차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남을 속이는 것도 부정한 일인데 우리는 자주 나 자신마저 속이며 살아간다. 지금 내가 번 돈이 정직하게 번 돈인가. 지금 내가 쓰려하는 돈은 진실 되게 쓰이는 것인가. 주 앞에서 24시간 민감하지 않으면 갖은 이유를 들어 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할 것이다. 이제 주님 앞에 솔직해지자. 교회도 마찬가지다. 정말 정직하고 진실된 교회되기를 원한다면 교회 재정의 단 일원이라도 귀하게 여기며, 교인과 세상 그리고 하나님께 정직하게 소통하며, 진실이 넘실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마저 이 정체성을 포기한다면 도대체 세상 그 어느 곳에 소망을 둔다는 말인가?

사람은 매일같이 선택하고 선택의 결과들이 모여 한 인생을 이룬다. 돈 문제는 신앙인의 시금석이다. 돈 문제에서 성공하면 그는 이미 멋진 그리스도인이다. 칼빈도 지갑의 회개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 사실 돈이 많고 적음은 어찌 보면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이 숨 쉬고 있는가 이고 그런 점에서 돈은 극히 부차적이고 변두리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돈을 중심에, 그리고 영혼을 가장자리에 놓고 사는 바람에 이토록 볼품없이 치사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변명하지 말자. 세상이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자. 몇몇 교회가 그렇다고 손가락질 하지 말자. 남은 삼백 용사, 남은 칠천 명, 의로운 열 명만이라도 이 교회를 지키자. 겸손과 가난한 마음과 정직한 행실로 공의가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자. 누구 편에 설 것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물신인가. 양쪽을 오가며 더 이상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단호하게 하나님 편에 서도록 하자. 지금 결단하지 못하면 평생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한다.

황호찬 교수
세종대 경영학부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