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修道)와 은혜(恩惠)

[ 예화사전 ] 예화사전

전덕열 목사
2014년 02월 20일(목) 10:59

어느 날 공자께서 제자들과 같이 호향(互鄕)이라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호향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나 생활의 태도가 선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곳 사람들과 같이 대화를 나누고 논의하기를 꺼려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공자(孔子)께서는 그곳을 지나시다가 한 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상히 보고 의혹을 품었다. 이에 공자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이 나아가려함을 밀어주고 뒤떨어짐을 허여(許與)함이 아니니 어찌 그에게 심하게 대하겠느냐"(與其進也 不與其退也 唯何甚)라고 대답하여 자기의 진심을 밝혔으니 즉 호향의 동자를 만남은 그 아이로 하여금 보다 좋은 사람으로 진보(進步)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여 제자들의 편협심을 꾸짖었다(論語 述而篇 28).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공자께서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의 큰 뜻을 읽게 된다. 공자께서 그가 살고 있는 인간사회에서 이루고자 했던 근본정신은 인간 속에 담겨 있는 인간의 밝은 본성을 바르게 계몽 발전시키므로 인간사회를 평화롭고 평안하게 세워나가려는 바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도 교육을 강조했고(有敎無類), 인간에게는 성실(誠實)함을 강조했다(不誠無物). 그러므로 유가사상(儒家思想)을 두고서 '수신재가치국평천하(修身齋家治國平天下)'라는 내용으로 설명하며 이는 현실중심의 강력한 도덕률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예수님의 삶에도 나타나 있다.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명의 삶을 시작하신 이후에 한번은 사마리아 지방으로 지나가시다가 우물에 들려 그곳에 물 기르러 온 한 여인을 만나 물 좀 달라고 하셨다(요한복음 4:4~30).

유대인들은 예수님 이전부터 사마리아 사람과는 교제를 하지도 않았고 그 지역으로 지나지도 않았다. 그것은 사마리아가 오래전 앗수르에 의하여 패망하면서 많은 이방인들이 이주하여 거주함으로써 유대인의 순수성을 잃고 혼합도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곳에 가시어 그 여인을 만나신 것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의 사명을 이루시고자 하심이었다.

참 하나님이요 참사람이신 예수님께서 제한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교육이나 수도(修道)를 통하여 인간을 인간되게 회복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죄인된 인간을 그 죄로부터 해방시켜 참 생명 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교육이나 수도(修道)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을 중심으로 한다.

전덕열 목사 / 한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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