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와의 가상 대화

[ 목회·신학 ] 현대신학산책

박만 교수
2014년 02월 14일(금) 14:37

 필자 : 바르트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지면을 통해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텐데요. 먼저 선생님의 생애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바르트 :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한국의 목회자들과 교인들과 인사 나누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저 저에 대해 간단히 말씀 드리지요. 저는 1886년 5월 10일 보수적 신학자이며 목회자였던 아버지 요한 프리츠 바르트 목사와 어머니인 안나 사이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베른에서 보냈고 1908년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신학석사를 받음으로 공부를 마쳤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자유주의 신학의 대가들인 아돌프 본 하르낙, 빌헬름 헤르만에게서 배웠으며 특히 헤르만 선생님의 사상은 상당히 오랫동안 저의 신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부를 마친 다음, 1909년~11년 사이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부목사로 활동했고 1911년에서 1921년 사이의 약 10년 동안 스위스의 아르가우 지방의 자펜빌이라는 작은 마을의 목사로 섬겼습니다.

 필자 : 그러니까 선생님은 신학교수가 되기 전에 지역 교회의 목사의 삶을 10년 이상 사셨군요. 목회자의 중요한 임무의 하나가 설교인데 설교를 잘하셨나요?

 바르트 : (웃으며) 글쎄요. 설교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지만 사실은 준비가 힘들었습니다. 그 주된 이유는 제가 배운 자유주의 신학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을 낙관적으로 보았고 인간의 이성, 종교성, 도덕성을 신뢰한 신학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거룩성과 영광, 그리고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지 못하였지요. 특히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기 보다 인간의 종교 경험의 표현이자 사회에 필요한 윤리적 원칙을 제공해 주는 책 정도로 간주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런 신학으로는 설교를 하기가 무척 어려웠던 것이지요. 그 당시 저의 평생의 좋은 친구였고 역시 설교의 문제로 고심하고 있던 투르나이젠에게 제가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당시의 저의 마음을 잘 드러내어 줄 것입니다. "오늘 두 번째 설교를 하기 전에 나는 창문 너머로 자펜빌의 주민들이 교회로 오기 보다 홀가분하고 한가롭게 이리 저리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네. 나는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다네. 비록 이론적으로는 그들이 자신들의 죄인 됨과 하늘의 기쁨에 대하여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일세. 그러나 나는 아직 그들이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네. 심지어 내가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네. 그리고 그동안 사람들은 평상복을 입은 채 한가롭게 여기 저기 다닐 충분한 권리가 있을 것일세."

박만 교수/부산장신대ㆍ조직신학
 
※ 칼 바르트 소개는 가상대화 형식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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