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2월 17~22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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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14일(금) 11:24

 

월-회개 후에 받을 하나님의 축복
본문 : 호 14:4~8
찬송 : 255장

본문은 회개한 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축복을 생명력 넘치는 자연현상에 비유하여 묘사함으로써 회개에 따른 축복의 확신성과 풍성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사죄와 구속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진정한 회개는 결단과 행동이 수반되는 전인격적인 회개를 말한다. 인간은 본래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이웃과 세상 속에서 자기 존재를 구현하도록 지음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수직적인 이웃과 세상과의 관계도 정상적으로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의 삶은 말만이 아닌 전인격적인 삶의 가치관과 방향의 전환을 통해 자신의 삶 전체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호세아서의 주제는 언약백성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며 죄에 대한 심판 선포가 아닌 회개하는 자에 대한 회복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이 이스라엘 백성의 종말론적인 소망과 풍성한 축복의 약속까지 주신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체적인 약속은 무엇인가?
 
패역을 고침 받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을 때 때로는 우리에게 극심한 환난이나 질병에 걸리게도 하시지만 이는 징계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패역함을 고치시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른 자리로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우리는 우리의 병든 몸과 영혼을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은총을 간구해야만 한다.
 
4절에서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오는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떠나간 저희의 패역함을 고치시고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로 회복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초목과 농작물의 소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슬과 같이 남은 자들을 소생시키고 그들의 복의 근원이 되겠다고 말씀하신다. 회복된 남은 자들은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영육간이 아름답게 될 것이며 레바논 산과 같이 견고하게 뿌리를 박고 설 것이며 어떤 악한 사탄의 유혹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6절에서의 또 하나의 약속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회복된 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언급으로 '그 가지가 퍼지며 열매와 잎의 아름다움이 감람나무같고 향기는 백향목같이 주변의 향기를 진동시켜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삶의 모습이 될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그늘 아래서 크게 번성하며 향기좋은 레바논의 포도주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풍성한 축복을 허락받는 말씀이다.
 
우리의 짧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설 마지막 기회임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오늘의 기도>
저희들의 완악함과 불순종을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뜻과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원선화 목사
/로뎀선교교회


화-하나님의 뜻대로 삽시다(3)
본문 : 롬 12:1~2
찬송 : 327장

예배라고 하면 우리는 공적인 예배만을 생각한다. 이것은 예배에 대한 정의가 바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배란 두 가지의 의미를 포함한다. 좁은 의미의 예배로 교회에서 모여 드리는 예배이다. 또 하나는 넓은 의미의 예배로 각자의 삶 속에서 드려지는 예배이다. 즉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예배이다. 한 쪽으로 기울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좁은 의미의 예배만을 강조한다. 이는 문제 있는 신앙, 신앙과 삶의 부조화를 낳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합당하게 여기시는 예배가 아니다. 예배에 성공하려면 이 두 가지 예배를 동시에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너희 몸을 산제물(예배)로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몸이 산제물이 될 수 있을까?
 
첫째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즉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지 말고, 말씀을 삶의 법칙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가 점점 세상을 본받고 따라가고 있다. 세상과 구별됨이 거의 없다. 한국교회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다. 그 안에서 무슨 신선한 영적인 생수를 낼 수 있겠는가? 성도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통한 예배이다.
 
둘째로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한다. 자꾸 이 세대를 본받고, 쫓아 살아가는 근본 이유는 마음이다. 마음이 바라보는 것에 우리의 손발이 움직이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 보다 세상의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찌 말씀이 들어오겠으며, 세상 것을 뿌리치며 살 수 있겠는가? 세상에 이끌려 살지 않으려면 우리 마음을 세상 보다 더 즐거운 것들로 채우면 된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그 마음이 풍성케 되도록 우리를 돕는다. 성령님을 늘 의지하고 그분을 환영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찾아가는 삶은 우리에게 천국의 기쁨을 소유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우리가 드리는 제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우리의 삶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물은 하나님의 법도와 계명을 지켜 행하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삶을 통해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며, 그들을 통해 축복을 펼쳐 나가신다.
 
<오늘의 기도>
예배를 회복하게 하소서. 삶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호목사
/용산교회


 수-사랑함의 증거는 용서
본문 : 마 6:12~15
찬송 : 623장

미국의 어느 마을에 율법적인 신앙을 가진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정의감이 강해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해야 돼!"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동조자들과 함께 세상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처단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무 죄가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이들이 설치해 놓은 폭탄이 터질 때 죽거나, 중상을 입게 되었다. 부인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것에 대하여 몹시 괴로워했다. 부인은 남편에게 이제 자기는 더 이상 이 일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어느 날, 폭탄 피해로 심하게 화상을 입고 흉한 모습으로 치료를 받으며 살고 있는 사람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인은 그곳으로 갔다. 몸의 반이 화상을 입은 여인이 자기 심경을 이야기 했다. 여인은 자신이 받은 괴로움, 분노, 억울함, 실의와 절망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분명하게 말했다. "여러분 저는 이제 제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분노와 억울함 등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와 다른 이들을 이렇게 만든 그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안히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이 여인은 그 순간부터 마음이 평안해졌다. 밝아졌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제 진정으로 사랑을 알게 됐고 참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새로운 복을 누리는 여인이 된 것이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빌 2:5~11절을 읽어보자.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 예수님의 마음은 한없이 낮아지는 마음, 보좌를 버리신 마음, 너를 위하여 나를 주는 희생의 마음이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마음, 원수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 여인은 고통 중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읽는 가운데 예수님의 참 사랑은 용서로써 이루어짐을 깨달았고 그대로 실천했다. 그랬더니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모든 짐들이 한꺼번에 다 벗겨졌다.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 것이다.
 
사랑은 끊임없이 끊어지지 않고 하는 것이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용서도 끊임없이 한다. 화가 나다가도 주님의 말씀을 따라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용서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없는 용서도 용서가 아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심을 따라 저도 용서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경종 목사
/광주명성교회


목-가장 강한 손
본문 : 신 7:16~26
찬송 : 408장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영적인 전쟁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은연중에 기대하는 결과가 있다.
 
하나님이 대적들을 쫓아주시고 우리에게 단번에 승리를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적은 여전히 강하고, 내 환경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힘이 빠지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두려워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된다.
 
하나님이 분명히 싸워주신다고 했는데, 내 대적을 쫓아주신다고 했는데, 왜 진전이 없는 것 같을까?
 
나를 부당하게 핍박하는 사람들,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세상 사람들, 교회를 흔드는 주변 환경들,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영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분명 싸우라고 하셨고, 물리쳐 주신다고 했는데, 막상 이렇다 할 성과는 없고, 진이 빠질 때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여기서 주목할 말씀은 "조금씩 쫓아내시리니"이다. 하나님은 단번에 확 쫓아내실 수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조금씩 쫓아내시는 분이시다. 때때로 하나님은 조금씩 천천히 일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라!'는 이 말을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실까?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급히 다 멸해버리고 나면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들짐승들이 번성하여 우리를 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저 사람 빨리 내 인생에서 사라지게 안 하시는 것일까?' 그 사람이, 그 문제가, 다른 문제들이 나를 해하지 못하도록 쓰이는 방패막이일 수 있다. 하나님은 완전한 지혜와 섭리로 나를 보호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기시고 그들을 크게 혼란하게 하여 마침내 진멸하시고…"
 
대적들을 쫓아내시고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따로 있었다. 그 대적들을 크게 혼란하게 하여 마침내 진멸하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괜히 힘들게 싸우지 않도록, 지혜를 짜내신 것이다. 그들의 왕을 우리 손에 넘겨주시어, 그 우두머리만 제하여 버리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효율적으로 일하시는 분이다. 우리의 힘과 수고를 아무렇게나 마구 허비하는 분이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인도해 나가시는 가장 강한 손을 갖고 계시는 분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세상을 두려워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지혜와 섭리로 나를 보호하시는 가장 강한 손을 갖고 계시는 크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감사하며 승리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위현 목사
/청주 대청교회


금-세 종류의 안경
본문 : 창 43:16~24
찬송 : 421장

본문을 통하여 세 종류의 안경을 찾아보고 우리가 어떤 안경을 끼고 살고 있는지, 또한 어떤 안경을 끼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고자 한다.
 
첫번째, 요셉의 안경, 즉 사랑의 안경이다.(16~17)

요셉은 양식을 구하러 온 형들을 위해 짐승을 잡아 음식을 준비하라 지시한다. 짐승을 잡을 정도라면 잔치 수준이다. 이상한 일이다. 요셉의 형들이 어떤 자들인데 그렇게 하라는 것인가? 지울 수 없는 뼈아픈 고통을 준 자들이 아닌가? 짐승이 아니라 저들을 잡아 쳐 넣어도 속이 안 풀렸을 것인데 음식을 베풀 수가 있을까? 그의 안경 때문이었다. 16절 앞부분을 보면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라고 나와 있다.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그토록 사랑하는 동생인 베냐민을 보고 그 베냐민을 통해 베냐민과 함께 있는 형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베냐민을 향한 요셉의 시선은 이리 보아도 사랑, 저리 보아도 사랑이다. 이것이 요셉의 위대함이었고 지혜였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었고, 예수님의 방법이었다.
 
둘째, 요셉의 형들이 가진 의심의 안경이다.(18~22)
 
대조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요셉은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나 요셉의 형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자신들을 잡아서 노예로 팔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하여 이들은 요셉을 의심한다. 이상하지 않는가? 특별대우를 받으면서도 왜 불안에 떨고 있고 공포에 질려 있는가? 이들의 특징은 모든 것을 문제로만 보는 것이다. 좋은 일이 생겼는데도 불행의 예표로 삼는다. 참으로 불쌍하다. 왜 그럴까? 항상 의심의 안경을 끼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속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것으로 여기고 의심하는 것이다. 주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죄용서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안경을 바꿔야 한다.
 
셋째, 요셉의 청지기가 쓴 믿음의 안경이다.(23~24)
 
23절과 24절을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청지기들은 불안에 떨고 있는 자들을 위로한다. 그들의 입에서 하나님을 말한다. 자루 속에 든 돈은 하나님께서 너희 자루에 넣어주신 것이라고 한다. 발 씻을 물을 주고, 나귀에게도 먹이를 준다. 참 이상하다. 어떻게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청지기들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읽었다. 주인이 하는 일들 속에 하나님께서 엄청난 복을 주신 것을 보아 왔다. 요셉은 신이 말하면 그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요셉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다.
 
우리도 사랑의 안경, 믿음의 안경을 쓰고 축복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사랑의 안경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해석하는 안경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석균 목사
/병영교회


토-창조적 인생
본문 : 창 1:1~5
찬송 : 79장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인생이 될 수 있는 재료를 주셨다. 재능, 교육, 돕는 사람들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재료를 가지고 경영하고 발전시켜 가치있는 인생을 살길 원하신다. 이를 위해 나의 존재의 근원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주라는 고백을 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이다.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주라는 개념은 어떤 혼돈, 어떤 공허, 어떤 흑암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성령으로 찾아가시면 어두움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면 계속 살아난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 부르시고 사랑해 주셨다. 우리를 대단한 존재로 최고의 인생으로 불러 주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만든 생각의 틀에 갇혀 자신의 능력을 제한해 버린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선택한 결과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평가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어떤 인생을 사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씨(sonship)와 통치권(kingship)을 주셨다. 씨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말인데 현대적인 용어로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을 말한다. 통치권은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사역하고, 양육하고, 치유해 주고, 배려해 주는 것이다. '너는 내 얼굴이다. 너는 나의 대행자라'고 우리를 출발시키셨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씨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이 땅에 씨를 남겨야 한다.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빌 3:12에서 말해준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꿈을, 푯대를 바라보았다. 우리도 자신의 인생을 경영하고 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성장하고 하나님의 대행자가 될 수 있다. 내가 변화되면 사람들이 나를 통해 살아나고 변화될 것이다. 이를 위해 훈련해야 한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빛을 선언해 주고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생명의 부양자가 되자고 선포하면 그 순간부터 달라지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서 생명의 부양자로 하나님의 창조의 일을 대행하자.

<오늘의 기도>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살고 있는 나에게 오셔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 창조적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상영 목사
/창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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