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 했어요!"

[ 4인4색칼럼 ] 4인4색칼럼

이의용 장로
2014년 01월 16일(목) 11:27

대학의 학기는 대부분 기말고사로 마무리된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홀가분할지는 몰라도 즐겁지는 않다. 만점 받은 학생 빼고는 그런 게 아쉬울 것같아 '종강식'이란 걸 해오고 있다. 시험은 한 주 전에 치르고, 마지막 시간에 한 학기를 되돌아보고 마무리하는 순서를 갖는데 학생들이 참 좋아한다.

지난 학기말 종강식 때에는 학생들이 날 앞에 나오게 하더니 꽃다발을 전해주면서 깜짝 퍼포먼스를 했다. 40명의 학생들이 한 명씩 일어나 자신을 가르쳐준 나를 칭찬해주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쳐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감사카드나 선물은 자주 받아보았지만 학생들이 던져주는 칭찬으로 샤워를 하기는 처음이었다.

학생들의 칭찬을 들어보니 그동안 내가 그들을 위해 쏟은 정성과 사랑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칭찬은 "교수님은 우리를 정말 사랑하신다"였다. 그걸 인정받으니 정말 기분이 좋았고, 한 학기 동안 지친 몸과 마음에 새 힘이 솟는 느낌이었다.

이름 하여 '칭찬 샤워'. 한 사람을 앞에 세워놓고 다 같이 칭찬의 말을 집중적으로 던져준다. 칭찬 세례를 받은 사람은 가장 마음에 드는 칭찬 하나를 골라 거울 속 자신을 향해 이름을 부르며 다시 칭찬을 한다. 내 수업은 언제나 소그룹별로, 혹은 전체적으로 10분간의 칭찬샤워로 시작된다.   

칭찬샤워를 해보면, 요즘 젊은이들이 다른 사람 칭찬을 잘 안하며 사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상대방이 지닌 칭찬거리를 좀처럼 찾아내질 못한다. 평소 연습이 안 돼 있어서다.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안 해봤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못 받아봐서다. 경쟁하고 비교하며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의 일상에서 칭찬이 낄 자리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빈정거림과 비판의 말만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다.

칭찬샤워가 거듭될수록 칭찬의 내용은 점점 깊어진다. "잘 생겼다", "키가 크다", "옷이 멋있다"는 식의 외모 칭찬은 "개성있다", "인내심이 있다", "남을 배려한다" 등으로 서서히 바뀌어간다. 칭찬을 해달라며 앞에 나서기도 하고, 일상에서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칭찬으로 수업을 시작하니 수업 분위기는 언제나 따뜻하다.

세상에 인정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남을 인정해주는 데 너무 인색하다.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교회에서조차 다른 사람을 폄하하고 비난하는 데 익숙하다. 가족끼리도 잘 했다며 박수를 쳐주거나 엄지를 추켜 세워주지 못한다.

'인정'은 사람을 일으켜 세워준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숙제 노트에 찍어주셨던 '참 잘 했어요!'라는 스탬프처럼, 칭찬은 그 사람에게 더 잘 하고 싶게 하는 동기를 만들어준다. 한 마디의 적절한 칭찬이 삶에 지친 한 사람을 회복시켜주고 절망한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기도 한다.

얼마 전 차를 운전하며 한강대교를 건너는데 길이 막혀 꽤 오래 서 있어야 했다. 그때 우연히 다리 난간에 새겨진 글귀들을 볼 수 있었다.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려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죽지 말라'는 간절한 호소문이자 격려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전화기도 한 대 설치되어 있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이 말들을 삶 속에서 도무지 들어보지 못해서가 아닌가?', '여기까지 내몰아놓고는 뒤늦게 이런 말들을 늘어놓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혹 내가 무심코 뱉은 한 마디로 인해 이 난간 앞에 서는 이는 없을까?'

그날 그걸 바라보며 깊이 반성했다. 오늘도 다른 사람에게 "참 잘 했어요!"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다음에는 이 다리를 걸으며 난간의 글들을 찬찬히 읽어볼까 한다.

이의용 장로 / 국민대학교 교수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