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한계와 희망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4년 01월 16일(목) 10:42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아쉬가르 파르하디, 드라마, 15세, 2013)
 
영화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점은 과거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제목의 원제는 사실 '과거'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갖고 있으면서 현재를 산다. 비록 과거를 공유한다 해도 그것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현재가 된다. 미래는 말할 것도 없다. 영화는 과거의 영향권에 있는 현재의 다양한 모습을 추적한다.

테헤란에 살고 있는 아마드는 과거 자신이 살았던, 그러나 4년 전에 떠났던 파리의 한 공간으로 다시 찾아온다. 재혼을 위해 이혼 소송을 조속히 처리하고 싶은 아내 마리가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의 과거는 감춰져 있고, 치워져 있으며, 가능한 한 빨리 정리되어야 할 것들이다. 그런데 아마드는 자신의 과거가 마리에게 여전히 현재로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호텔을 구하지 않고 집에 머물도록 한 것이나 4년 전에 떠난 남편의 짐을 처분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점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와의 관계에서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는 것도 그렇다. 그럼에도 그와 그녀의 공통의 기억 속에 있는 과거는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기 위해 빨리 정리되어야 할 것들이다. 이것은 마리가 집안의 가구들을 새롭게 배치하고 또 페인트칠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현재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미르와 살고 또 결혼을 계획하고 있으나 평탄치가 않다. 왜냐하면 사미르의 아내가 자살기도 후 후유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때와 흔적들을 지워버리는 일을 하는 그에게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아내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과거이다. 마리의 첫 번째 남자에게서 난 딸 루시는 엄마의 과거 남성 편력에 대해 불만을 품고 사미르와의 관계를 불신한다. 그래서 둘 사이의 관계를 사미르의 아내에게 폭로하였고 그 때문에 그녀가 자살을 시도하였다고 믿고 고통의 나날들을 보낸다. 그러나 오해였다. 루시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사미르의 아내가 아니라 세탁소 여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자살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에 남편과 살가운 관계를 갖지 못하며 지냈던 아내가 사미르와 세탁소 여직원과의 관계를 의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해였지만 루시에게는 쉽게 지울 수 없는 과거였다. 이 일에 대한 그녀의 트라우마는 그녀뿐만 아니라 엄마와 새로운 남자와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

이처럼 영화는 비록 과거는 지나간 것이라도 결코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고, 현재와 미래는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를 잊고 미래를 위해 새롭게 출발하자고 사미르가 말하지만, 마리는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를 반문한다.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고는 새롭게 출발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결국 영화는 과거의 영향권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까를 묻는다. 그리고 코마 상태에 빠져 있는 아내가 남편 사미르가 좋아하는 향수를 맡고 반응하면서 남편의 손을 붙잡는 마지막 장면은 현재는 결코 과거와 단절될 수 없다는 메시지로 독해가 가능하다. 과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으나,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시작을 위해 과거를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는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으로서 도대체 가능할까? 이것이 영화를 매개로 우리가 제기하는 질문이다.

바로 이 질문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때, 과거를 깨끗이 지워버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과거는 더 이상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맡겨져야 할 영역이다. 우리 스스로 정당화하거나 합리화 할 까닭이 없다. 하나님에게 돌아서서 우리의 과거를 받아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해결해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칭의에 대한 신앙이다.

이 메시지는 기독교 신앙에서 회개 혹은 중생과 맞닿아 있다. 기독교에서 새로운 시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하게 되는데, 그분과의 만남과 그분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는 것을 두고 우리는 중생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회개한 과거는 그분의 손에 붙잡히게 되고,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통해 펼쳐지는 미래를 향해 갈 수 있을 뿐이다. 현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희망 가득히 살아가는 인간의 공간이지만, 미래는 하나님의 약속이 열어주는 공간이며 또한 성취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현재를 희망 가득 안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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