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와 함께하는 삶

[ NGO칼럼 ] NGO칼럼

이재원 관장
2014년 01월 15일(수) 09:43

현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사랑하는 것처럼 표현하지만, 실질적인 행함, 행동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음을 우리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에게 손해 가는 것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변화된 오늘의 사회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 사회는 빈익빈 부익부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더욱 더 심화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가진 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와 함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라는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단어가 갑자기 유행처럼 많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이 국민들로부터 존경 받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국민들로부터 존경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에 존경보다는 비난을 받아야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더욱 강조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부자를 가리켜 '잘 산다'라고 하며, 가난한 사람을 가리켜 '못 산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물질을 가지고 각 사람의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 주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재물이 많으면 '잘 사는 사람(^행복한 사람)'이며, 반대로 재물이 적으면 '못사는 사람(^불행한 사람)'일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이러한 물질만능적 가치관은 절대로 올바른 가치관이라고 할 수 없다. 세상 사람 누구나 가난하게 살기 보다는 부유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재물을 갖고 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질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사는 것이다. 주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에 대한 이중성을 갖고 있다. 물질을 멀리하는 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을 강조하거나 물질에 대한 축복 받기를 원한다. 물질은 그것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자가 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니므로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돈을 버는 방법과 번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가 되면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1)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 시설이나 단체에 기부 혹은 후원을 한다. 특히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여러 사회복지단체에서 모금활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많은 기업들이나 사람들이 그 뜻에 동참하고 있으며,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매스미디어에서는 이름 없는 천사라고 표현하며 거액을 기부하는 독지가들의 훈훈한 이야기를 전하고, 많은 교회들도 어려운 이웃들을 더욱 더 잘 보살피고자 구제사역에 힘을 쓴다. 또한 제도권에 있든지, 밖에 있든지 간에 많은 사회복지시설들은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는 지극히 작은 자들을 위하여 많은 봉사와 헌신을 하고 있다. 특히 교계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들은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각자의 소명의식을 갖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아쉬운 점은 예산상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현실적으로 그들에게 충분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해가 시작되면 우리들은 많은 다짐과 결단을 한다. 작은 자와 함께하는 삶은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며, 사명일 것이다. 2014년 한 해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 모두 주변의 사회복지시설들을 돌보며 작은 자와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

이재원 / 종로종합사회복지관 관장ㆍ새문안교회사회복지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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