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월13~18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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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09일(목) 11:36

월-말씀의 능력과 담대한 믿음
본문: 히 4:12~16
찬송가: 526장
 
마틴 루터는 "만약 성경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 할지라도 나는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결코 떠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정치적인 권모술수를 행하거나 극악한 횡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로마서를 연구하던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게시판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재한다. 이로 인해 본격적인 종교개혁이 시작되었고, 이후에 루터는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피력했다.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단지 하나님 말씀만을 제대로 가르치고 설교하고 기록했을 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심으로 전하는 일에 노력했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평소와 같이 말씀 그 자체에 전심전력하는 일상생활을 한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제가 아니라 오직 말씀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능력이 있다고.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활동을 한다는 의미인데, 생명체와 같아 스스로 움직일 뿐 아니라 힘과 능력이 있어 무엇인가를 일으키고 새롭게 하고 길을 열어 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말이다. 또한 말씀은 예리한 양날의 칼과 같이 날카롭고 정확하게, 진리와 비진리를, 본질과 비본질을 분별해 내는 능력이 있다. 이 생명의 말씀이 믿음의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보호해 준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세상 지식과 정보의 미혹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비결은 오직 말씀이다. 말씀의 예리한 분별력과 통찰력은 시대의 상황과 역사를 꿰뚫는 힘이 있다.
 
또한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도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자한 왕이시며, 하늘 보좌에 앉아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동시에 그는 중보자인 대제사장으로서 연약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며 죄가 없으신 분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거기에 참된 안식과 소망이 있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핵심은 주님의 인격과 사역이다. 주님은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며, 죄에 대해 온전한 승리자이이시다. 이것을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세상을 이기고자 하는 성도는 언제든지 하나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예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믿음의 권세와 능력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세상을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능력의 말씀을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도리를 붙들고 끝까지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은기 목사/엄정교회


화-하나님이 앞서시게 해야 합니다
본문: 삼하 5:17~25
찬송가: 351장
 
사람은 한 평생 동안 많은 일을 겪는다. 그 중에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사람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도 많다. 그리스도인이 문제 해결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 생각을 하나님 생각보다, 자기주장을 하나님 주장보다, 자기 경험을 하나님 말씀보다 앞서게 했기 때문이다.
 
금년 한 해 우리가 잘되고 복 받는 길은 모든 일에 하나님이 앞서시게 해야 한다. 우리의 언어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갑시다'라고 해야 한다.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비판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이다. 하나님은 비판 대신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8)"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언어 속에 불순물을 정제해 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때로는 전문적인 지식으로 하나님보다 앞서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전문적인 지식보다 믿음을 더 귀하게 보신다. 비록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의 믿음을 들어서 쓰신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쓰임 받는 요소들이지 결코 그것으로 인해 우리 자신이 하나님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본문을 보자.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하여 르바임 골찌기에 진을 쳤다. 다윗은 민족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처신하였는가. 그는 먼저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라며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께서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고 응답하셨다. 전쟁은 다윗의 승리로 끝났다. 블레셋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올라왔다. 이번에도 다윗은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은 처음과 다른 전술을 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고 하셨다. 이번에도 다윗이 크게 이겼다.
 
두 번의 전쟁에서 다윗이 대승을 거둔 비결은 무엇인가. 하나님보다 자신이 앞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자나 곰을 맨손으로 때려잡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을 앞에 두고 자신의 힘이나 용맹이나 지식이나 지혜나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않았다. 하나님을 이 모든 것보다 앞서시게 했다. 그것이 다윗이 승리하는 인생을 산 비결이었다.
 
<오늘의 기도>
내 생각을 하나님 생각이라 말하지 않게 하옵소서. 내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말하지 않게 하옵소서. 모든 삶에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병일 목사/남명교회


수-영원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본문 : 요 5:1~9
찬송가 : 90장
 
요한복음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신 사건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성육신의 사건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의 사건이다. 그런데 종종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도 사랑하실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예수님이 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까?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면 당연히 성전으로 가실 것이라고 예측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유대인들은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명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제사에 참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9절에 의하면 이 날은 안식일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자마자 성전 제사에 참여하지 않고 곧바로 베데스다 연못으로 가셨다.
 
그리고 베데스다 연못에 몰려있는 수많은 병자들 사이를 걸어 38년 된 병자에게 가셨다. 요한이 이 사건에서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배경을 밝힌 이유는 예수님이 바로 38년 된 병자를 만나기 위함이라는 데 있다. 그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을 괴로움에 시달리다 죽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날 예수님을 만나 자리에서 일어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요한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밝힌 이유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38년 병자는 소망이 없는 인생이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그에게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 질문을 통해 예수님이 명절에 왜 예루살렘에 오셨는지를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참된 희망임을 밝히고 있다.
 
요한복음 4장 3절에서도 요한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예수님의 이동을 보여주면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왜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셔야 할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면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는 예수님을 볼 수 있다. 요한은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고, 이 말씀을 읽는 우리는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감격하게 된다.
 
그러기에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만 있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셨다"라고 고백했다. 이 영원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이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면서 감격 속에 맞이하는 희망찬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사랑에 감격하여 늘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병철 목사/초대교회


목-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
본문: 신 12:1~14
찬송가: 428장
 
새해를 맞이하고 평안히 거하게 된 이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신명기 12장 본문은 우리를 향해 3가지를 말씀한다.
 
첫째, "그처럼 행하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위해 쫓아내야 할 이방민족들이 그들의 신을 섬기듯 하지 말고, 그 신들을 깨트리고 멸하며, 그들처럼 하나님께 행하지 말라 하신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우상을 만들고,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신성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택해 우상을 섬겼다. 그러나 너희는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숭배를 단순하게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부처에게 절하고, 조상신에게 제사하고, 다른 종교의 신상을 만들고 섬기고, 점을 치고 굿을 해서만 우상숭배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겨도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방식으로 행한다면 우상숭배인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 섬김에는 드림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구원과 사랑과 축복을 알고 감사하면서, 우리의 마음과 몸과 재능과 예물을 드려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오늘 우리는 예배에서 십일조와 감사의 헌금을 드린다. 우리가 헌금을 드리는 일은 분명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아까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재물에 대한 사랑과 욕심, 의무감과 인색함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구원과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고,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드림이 곧 우리의 믿음이고, 사랑이고, 헌신이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에게 더욱 풍성한 축복으로 채우신다.
 
셋째, "함께 즐거워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축복을 주시며 즐거워하라 하신다.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 하신다. 진정한 예배, 진정한 축복의 특징은 즐거움이다.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와 평안을 누리면서도, 불평하고 화내고 다투고 한다면 큰 잘못이다.
 
우리는 자녀들, 성도들, 직장 동료들,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광야 같아서 몸과 마음과 가정과 사회에서 갈등과 아픔은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즐거워하는 축복을 빼앗기지 말자.
 
<오늘의 기도>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만 섬기며, 그 은혜와 복을 함께 즐거워하는 한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재범 목사/일신교회


금-우리는 경주자
본문 : 히 12: 1~2
찬송 : 359장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박을 받고 있을 때 손기정 선수가 일본 국기를 달고 올림픽 마라톤에 나가 우승을 했다. 손 선수는 어릴 때부터 맨발로 뛰어다녔다고 한다. 신발자체가 거추장스럽고 무거워서 아예 벗어버리고 달리기를 했다. 많은 노력과 인내의 과정이 그로 하여금 세계 올림픽에서 비록 대한민국 태극기를 달고 나가지는 못했지만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의 선수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달리는 경주자와 같다고 하신다.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다간 신앙의 선배들의 예(히 11장)를 들면서 2014년도를 출발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신앙 경주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경주란 무엇인가? 그것은 약속의 땅 장차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될 땅을 향해 달려가는 경주이다. 이 경주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광스러운 구속의 날과 주실 상급을 바라보며 허다한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격려를 받으며 뛰는 경기이다. 우리 예수님도 이 과정을 겪으시고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먼저는 뛰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몸의 무거운 죄의 옷을 벗어던져야 한다. 신앙 생활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는 요소를 찾아내어 제거해야만 한다. 육신의 안락함, 물질과 이 세상을 추구하는 것, 영적 건강에 도움 되지 않는 스포츠, 영화, TV, 세상 음악, 쾌락, 방종, 정욕, 교만, 세상 친구들, 인터넷 게임, 게으름 등이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들이다.
 
다음에 경주자에게 중요한 것은 인내이다. 달리는 사람은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도 참고 끝까지 달려야 한다. 중도에 아프다고 힘들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우리가 참고 견디면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경주자는 누구를 바라보고 뛰어야 하는가이다. 바로 예수님이다. 뛰는 자가 무엇을 바라보고 뛰는가에 따라서 골인지점이 달라진다. 우리의 목표 대상은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이다. 바라보자는 말은 예수님께 집중한다는 말이다. 경주자들이 그의 시선과 마음을 예수님께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친히 믿음의 경주를 하셨고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경주하는 법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이제 무겁고 힘든 죄짐을 벗고 예수님께 시선과 마음을 집중하여 우리의 믿음을 지켜 달려 갈 길을 달려가면 이제 후로는 의의 면류관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을 것이다. 올 한 해도 열심히 경주하는 승리자의 한 해가 되길 간절히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올 한해도 무거운 죄, 얽매이기 쉬운 모든 죄를 벗어버리고 예수님께만 집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기삼 목사/산성교회


토-일어나 걸어가자
본문 : 행 3:1~10
찬송 : 38장
 
오순절 성령이 임하였을 때 초대 교회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생활을 하였다. 반면 본문에 우리에게 소개된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는 어떤 자인가? 그의 인생은 포기한 인생이었다. 한 번도 스스로 일어나거나 앉아 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갔을 때에도 그는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입구에 앉아 그저 구걸했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그가 삶을 포기한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신체적인 조건으로 일할 수 없다고 좌절하였다. 둘째, 매사에 자신이 없는 자였다. 과거에도 시도하였지만 안되더라며 자신을 포기해 버렸다. 셋째, 신체적인 조건을 치료해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성전에서 구걸할 수 있도록 데려다 주는 자는 있었지만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치료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자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어나야 한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인생의 황금 시기이다.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처럼 일어나 걷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갈 때에,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 못걷게 된 자에게 자신들을 보라고 한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능력이 없고 이제까지 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해도 포기하지 말자. 베드로와 요한 역시 한 때는 포기한 사람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새로운 삶과 능력을 주셔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일으켜 세우셨다. 힘들고 지쳐 있다고 좌절하지 말고  예수님을 붙들고 일어서자. 주님 앞에 나가면 실패한 자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병든 자가 치료받고 마음의 상처받은 자가 위로를 받는다.
 
변화되어야 한다.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 한 번도 걷지 못한 발이 힘을 얻고 서게 되었다. 성전에 들어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갔다. 앉은뱅이 인생이 걷는 인생, 예배드리는 자로 바뀌었다. 구걸하던 입술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로 변했다. 구걸하는 인생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로 변하였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일어나기는 잘 일어나는데 삶의 변화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할 수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자로, 부정적인 자가 긍정으로 하나님에 영광을 돌리는 자로 변화되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영적, 육적인 장애인이 되지 않게 하시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한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승익 목사/무등벧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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