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기독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말(言)의 죽음

[ 제15회 기독신춘문예 ]

강민석
2014년 01월 08일(수) 10:01

말(言)의 죽음

                                      강민석

결국 모든 말이 죽었다.
입이 얼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우린 그 눈보라 속에서 아무런 말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먼저 죽었다.
우린 서로를 밤하늘처럼 오랫동안 바라보았고
사랑은 별빛처럼 제 빛을 찾아갔다.
살기를 갈망하는 몇몇만이 간혹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뒤이어 고맙다는 말이 죽었다.
어떤 이들이 옷을 벗어 자녀들을 입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해
우리는 고맙다는 말의 죽음을 묵묵히 응시해야만 했다.
살기를 갈망하는 몇몇만이 간혹
두툼한 옷 사이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말들이 차례로 죽어가고
끝으로 삶이라는 말이 죽었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엮어 몸을 덮었고
지금이라는 말이 남긴 유품들을 태워 몸을 녹였다.
살기를 갈망하는 몇몇만이 간혹
수 천 킬로미터 밖에서 활을 쏘듯 삶이라는 말을 했다.

결국 모든 말이 죽었다.

내가 그 꿈에서 어떻게 깨어났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말들은 살고 말들이 애타게 부르던 것들은 죽어버린 이 세상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세상은 뜨겁고
사랑은 어느 그림자 틈에 혼자 쓰러져 잠이 든 것인지
사랑한다는 말만이 꽃단장한 영정사진처럼
길거리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다.
상주도 없는 거리에서 나는 상주마냥 우두커니
너를 기다린다.

제15회 기독신춘문예 시 당선자 강민석
"삶으로 시를 쓰는 시인, 좋은 그리스도인 되고파"
  
   
꽃이 만개한 화분보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화분이 더 갖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미 피어난 꽃보다 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갖고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화분에 담긴 식상한 푸른빛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언젠가 피어날 화사한 꽃을 상상하는 일은 시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인 것 같습니다.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기쁘면서도 제 분수 이상의 큰 상을 받는 것 같아 쑥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제가 쓴 시가 매혹적인 꽃처럼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앞으로 피어날 어엿한 꽃송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뽑아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쑥스럽지만 기쁜 마음으로 상을 받고, 쑥스러운 만큼 더 정성스럽게 제게 맡겨진 화분을 가꾸어가는 것이 제 시를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것에 대한 저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언제나 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고 신뢰해주는 아내에게 가장 먼저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내의 지혜로운 사랑이 저를 얼마나 하나님과 가깝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딸 예채와도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아직 당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나이이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한 아빠의 마음입니다. 시의 '시옷'도 모르던 제게 처음 시를 가르쳐주신 김소연 시인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닮고 싶은 시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심사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더 성숙한 시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글보다 삶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고 싶습니다. 좋은 시인이기보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강민석
- 1980년 1월 19일 출생
-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대학원 재학 중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